아무도. 아무것도.
D의 집에 들어가는 일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딱 한 번 D가 살아계실 때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가 보았다. 마침 어린 강아지가 오줌을 싸서 당황했다. 강아지 키우는 집 특유의 냄새가 났고 앉으라고 했지만 앉을 만한 곳은 없어 보였다. 병원에서 받은 종이에 무어라 쓰여있는지 좀 봐달라는 것이었는데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D가 돌아가신 직후 병원의 장의사가 남편의 유골함 얘기를 전했을 때 그 집에 가서 어디에 있는지만 보고 오라고 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친구에게 같이 가주길 부탁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그날 만나기로 했던 친구였다. 만나러 나가지 못할 것 같고 그 이유가 선생님이 돌아가셔서이며 남편의 유골함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고 해서 가야 하는데 혹시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같이 가주겠다고 해서 어려운 부탁을 했는데 고마웠다. 다음날 약속한 시각이 되어 전화하니 아직 집인데 혹시 점심을 먹고 가도 되겠냐고 했다. 나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혼자 가겠다고 했더니 난처해한다. 괜찮다고 하고 마음을 다잡고 집 앞에 도착했는데 막상 들어가려고 하니 심장이 뛰고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고 119에 신고했던 그날이 떠올라 정말 많이 망설여졌다. 그래도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겠지. 생각에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았다.
아무도 없는 집. 적막하다.
강아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늘 들렸던 그 소리. 안쪽에 있는 방에 보니 한글로 벤.이라고 쓰인 항아리가 있었다. 열어보지도 않고 그것만 보고 그냥 나왔다. 장의사분께 위치를 알려드리고 다시 나오는 길이 여름인데도 서늘했다.
이후에 벤의 여권과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여권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미국의 가족에게 혹시 여권과 사망진단서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아마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며 집안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한다. 어딘가에 있겠지. 어디인지 궁금한 것이지.
J에게 전화했다. D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매우 슬퍼하던 사람이었다. 예전에 벤이 살아있을 때 함께 살았던 집의 주인이라고 했다. 전에 사진 작업을 같이했던 아야가 번호를 알려주었다. 이분이라면 D를 도울 수 있을 거야.라고 했다. 과연 전화를 드리자마자 다음날 만나서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코닥 스티커가 붙은 지프를 타고 모자를 눌러쓴 J가 왔다. 반가웠다. 두 가지를 꼭 찾아야 한다고 하니 들어가 보죠. 하며 문에 들어서자마자 아…. 이 노인네 청소 좀 하고 살지 지난번 집에서도요 아주 개털이 난리였거든요. 처음에는 돌아가신 분인데 말씀이 심하시지 않나 했는데 왜인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여기저기 살펴보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혼잣말하신다. 서랍도 책장도 그 어디도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먼지는 두껍게 쌓여있었고 정리는커녕 그냥 쌓아두기만 한 것이 몇 년인 것 같았다. 책장의 책도 그냥 마구잡이로 쌓여있었다.
D가 119에 실려 병원에 입원하시고 나서 바로 청소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5만 원이라고 했다. 아마 강아지 배설물이 조금 있을 수도 있어요…. 다시 전화가 왔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야. 사람이 살았던 거 맞아요? 10만 원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10만 원 드릴게요. 잘 부탁드려요. 10만 원이나 주고 청소를 맡겼었는데 바닥만 겨우 해주신 것 같다. 안쪽의 다른 방은 배설물이 그대로 있었다. 서랍을 뒤져 겨우겨우 벤의 여권을 찾았다. 사망진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장례를 치른 병원이 어딘지 알고 있고 그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한번 부탁해 본다고 하고 일단 헤어졌다. 나도 다시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옷을 입으려는데 전화가 왔다.
안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