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모교의 도서관 2층. 피아노 멜로디가 잔잔하게 흐르는, 한가로운 이곳에서 미니 테이블이 부착된 작은 소파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오랜만에 실감한다. 내가 회사를 벗어난 자유인 신세라는 것을. 그리고 소속되지 않아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있다는 것을.
과장을 약간 보태자면 오늘은 황홀한 금요일이었다. 학원 휴강 덕분에 두 달 만에 짜릿하게 평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평소 알람 그대로 6시에 일어나 달뜬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루틴인 모닝 페이지와 독서를 마치고 난 후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이불 빨래를 돌릴 정도였다. 자그마한 건조대에 펼치듯 널어둔 건 이불인데 그것보다 내가 먼저 보송해진 기분으로 외출에 나섰던 것 같다.
오늘 나의 계획은 한마디로 ‘즉흥’이었다. 아무 계획 없는 하루를 계획한 것이다. 학교에 다다르면 이끌리는 대로 책을 볼 것. 좋은 봄 날씨를 온전히 누릴 것.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게 압축할 수 있다. ‘모교 도서관, 게으른 독서, 교정 산책’
나는 홀로 느리게 누려야 표정이 풀어지는 사람이었고 휴식엔 그런 나른한 얼굴이 꼭 필요했다.
두 달 만에 다시 본 학교는 생각보다 더 반짝였다. 벌써부터 녹음이 드리워진 모습. 퇴사 직후 후배들이 만든 (조각에 가까운) 토토로나 하르방 눈사람을 입 벌리며 구경했던 게 불과 몇 개월 전이었는데 눈사람이 있던 그 자리에는 어느새 울긋불긋한 새 생명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나칠 수 없도록 아주 푸르고 붉은빛으로 말이다.
교정의 작은 부분조차 지나치지 않고 머물러준 봄의 모습이 참 예뻤다. 잔디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재학생들의 뒷모습도 보기 좋았고 교정을 거닐며 천천히 데워지는 얼굴을 느끼는 일도 좋았다. 사계절의 시작점이 이렇게나 예뻤었나 새삼 봄의 위력을 체감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이 찬란한 봄도, 황홀한 자유도 오래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더 귀하게 담긴다 걸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햇빛이 강렬했던 정오부터 서서히 땅거미 지는 시각까지 학교에 머물렀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없던 도서관 야외 테라스에서 하얀 철쭉과 마주 앉아 책을 읽은 오늘. 이걸 쓰면서 그 순간이 벌써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이 문장을 읊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