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한국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코로나 시대
시험 전날 책상 정리하듯, 번역을 하다 말고 글을 쓰고 싶어져 굳이 브런치를 열고 적는다.
4월부터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에서 문학번역 야간과정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2년짜리 정규과정도 있는데 직장인은 당연히 수강하기 어렵고(게다가 타지에서)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야간과정이 있어 지원했다. 다행히 한국 시간으로 저녁이라 런던에서도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다.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지원했는데 서류전형에 필기시험에 면접까지 봐서 살짝 당황했지만 다행히 합격해 열심히 듣는 중.
문학 번역에는 관심이 없다가 올해 초 런던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유진이 선물로 준 긴긴밤을 읽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한국 사람들만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알아보기 시작했다. 번역 출간되는 한국 문학은 매우 적었고 전문 번역가도 다섯 손가락에 꼽는 정도. 주변에 물어보고 검색하다보니 한국문학번역원을 알게 돼(인스타그램 광고가 뜬 것 같기도, 역시 무섭다) 마침 모집공고가 떠 지원하게 된 것.
번역을 전공하고 관련 직업을 갖게 된 건 전혀 계획한 게 아니지만, 언어와 문화의 상호관계는 오랜 관심사다. 언어에는 문화가 반영되기 마련이고, 반대로 어떤 언어를 쓰느냐가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나부터도 한국어를 쓸 때와 영어를 쓸 때 다른 걸 느끼니까. 언어가 사고를 바꾸는 걸 보여주는 끝판왕은 내가 추앙하는(borrowed from <나의 해방일지>) SF작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들의 시간까지 습득하는 주인공. 크...
세계 각국의 원어민들과 매일같이 소통하고 어떤 개념이 어떤 언어로는 번역되기 어려운지, 어떤 내용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각양각색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접하는데, 아직도 재밌고 신기할 때가 많다.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언어를 익혀야만 그 지역, 그 집단의 구성원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 학기동안 선정된 작품을 번역해야 하는데 드디어 다음 주에 일부를 제출해 크리틱을 듣게 된다. 날씨가 좋은 런던의 주말에 실내에 앉아 머리 싸매고 번역한다. 내가 왜 이걸 듣고 있지? 왜왜왜? 엄마가 분명 '사서 고생'이라고 잔소리할 짓을 또 하고 있구나. 역시 문학 번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며 과연 내가 이걸 실전에 써먹을 기회가 있을지 반신반의하지만, 덕분에 요즘 영어로 된 한국 문학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몇 년 전에 읽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영어로 읽으며 번역에 감탄했고(류승경 번역사의 링크드인을 스토킹하니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후배더라, 괜히 뿌듯.) 지금은 『저주토끼』로 부커상 후보에 올라 한창 핫한 허정범 번역사의 『대도시의 사랑법』(작가 박상영)을 읽고 있다. 한글로 읽어본 적 없는 작품을 영어로 읽는 건데 술술 읽힌다. 한글로도 구해서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