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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Sep 19. 2024

학생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

학생 상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부모 상담을 꼭 하려고 합니다. 상담실 내방이 어려울 경우에는 간단히 전화로라도 하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초등학교 상담에서 부모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더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은 아직 부모 품 안에 있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과 중학교 1학년 학생은 고작 한 살 차이이지만, 아이가 교복을 입는 순간부터 부모님은 아이를 청소년의 범주에 두기 시작합니다. 아이도 본인 스스로를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으로 생각하게 되고요. 반면에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초등학교에서는 대장 격일지라도 여전히 부모 품 안의 자식으로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초등학교 시기는 중고등학교 시기에 비해서 부모의 영향력이 좀 더 직접적이라고 느낍니다. 


부모는 아동 상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협력해야 할 대상입니다. 부모의 노력과 변화, 협조 없이 아이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혼자서 자기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과 의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똑같은 다이어트 계획을 매년 세우는 우리의 모습만 되돌아보더라도 자기 행동이나 습관을 변화시킨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초등학생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겠다는 노력을 혼자 관철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반 친구들과 갈등이 잦고, 친구의 행동을 쉽게 오해하면서 늘 억울해하던 3학년 학생이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한 학생이었는데, 늘 갈등의 중심에 있다 보니 친구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다툰 일로 여러 차례 학교의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걱정되는 마음에 상담을 신청한 사례였어요. 학생을 만나고, 어머니를 만나면서 파악한 것은 어머니가 학생의 거친 행동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정작 훈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훈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잘못된 행동을 다그치려고 하면 '우리 불쌍한 막내'라는 마음이 떠오르면서 정작 중요한 가르침은 주지 못한 채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의 거친 행동 때문에 화가 난 감정은 있는 그대로 쏟아내고, 그 이후에 자신이 화를 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리만 듣는 우리 불쌍한 막내'라는 마음이 더해지면서 제대로 된 훈육이나 지도 없이 상황이 끝나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몇 차례의 전화 상담 끝에 어머니에게 제가 생각한 바를 말씀드리니, "사실은 마음이 약해져서 훈육을 못하겠다."라고 고백하셨어요. 처음에는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듣는다."라고 하시다가 드디어 자신의 현재 상태를 직면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을 인정하신 것이지요. 


그 이후에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해보겠다는 다짐도 하셨어요. 거기까지는 어렵사리 도달했는데, 그 뒤로 꾸준히 실천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상담 중기 이후에 담임선생님께서 "요즘 oo이 문제 행동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시기도 했는데,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 곧 다시 원래의 행동으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 행동 문제는 일관적인 훈육 아래 꾸준히 연습해서 몸에 체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정의 협조가 빠진 초등 상담은 앙꼬 빠진 찐빵이나 다름없습니다. 


양육자의 변화로 빠르게 문제가 개선된 사례도 있습니다. 1학년 학생의 학교 거부로 상담에 의뢰된 케이스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학교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일이 잦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등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엄마와의 분리불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학생을 만났는데, 불안이 높은 아동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하는 바가 명확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서 울거나 아프다는 말로 회피하고 있는 양상이었습니다. 어머니와의 상담을 통해서 "아이가 울면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에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부분에 대한 양육태도 변화가 필요함을 안내했습니다. 그 이후에 어머니께서 학생에게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학생도 곧 학교에서 울거나 아프다고 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어 무사히 학교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니가 한 번씩 상담실로 먼저 연락을 주셔서 피드백을 받으려는 적극성을 보여주셨고, 그 노력에 부응하듯 결과도 만족스러웠던 사례입니다.


부모 상담을 할 때는 늘 조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좋은 말만 할 수 있는 자리라면 좋을 텐데, 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모의 실수나 착오를 집어내어 말하게 되는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실수나 착오가 결과적으로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부모에게 쓰라릴 수밖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이 편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다 알지 못하는 가정사나 미묘한 맥락이 있을 수 있으니,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해집니다. 부모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어떤 이야기를 했다가 부모와의 라포가 깨지고, 상담의 협력자를 잃게 되는 결과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섣불리 방어적인 어머니에게 자녀 양육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가 그 뒤로 부모 상담을 아예 못하게 된 실패 경험도 있거든요. 


학생과 좋은 관계를 맺고 상담을 진행하는 것만큼이나 양육자를 만나서 상담의 조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상담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심지어는 상담 효과를 더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부모 상담에 더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아이만 만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 또 있었던 것이죠.




사진: UnsplashNatalya Zaritsk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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