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중에 어린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꾸만 대화의 경로를 이탈하는 학생을 만났을 때입니다. 주말에 친구랑 슬라임 카페에 가서 놀다가 싸웠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엄마가 집에서 슬라임을 가지고 놀면 혼낸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다른 친구네 집은 게임을 무한대로 허락해 줘서 부럽다는 이야기로 이어는 식인데요. 친구랑 싸웠던 일이 상담의 주제였는데, 그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나는 것들을 곧바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생이 경로를 이탈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다 보면 저도 같이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학생이 가져온 주제에서 너무 멀리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브레이크를 잡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작 해야 할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 버리거든요. 자기만의 흐름을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학생의 말을 한 번은 끊어야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는데, 처음에는 그 흐름을 끊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창 이야기하고 있던 학생의 흥을 깨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그렇지만 이제는 적당한 때에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가이드합니다. 상담은 학생과 단순히 수다를 떠는 일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활동이니까요. 학생이 경로를 이탈하더라도 저는 원래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자, 그래서 슬라임 카페에서 싸운 친구랑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거야?"라고 대화의 경로를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충동성이 있어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들을 바로 이야기하느라 경로를 이탈하는 학생도 있지만 다른 이유를 가진 학생도 있습니다. 상담 선생님이 이야기하려는 주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쓸데없는 말을 계속하는 경우인데요. 이런 케이스라면 그 주제에 대해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해서 잠시 다루는 것도 좋겠지요.
두 번째는 말을 할 때 문장의 길이가 매우 긴 학생을 만났을 때입니다. 특히 친구관계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주의해야 해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들어야 에피소드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개 등장인물이 2명 이상이고 그 인물들은 A, B와 같은 알파벳으로 지칭되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특징, 그들 간의 역동을 포함한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세부묘사에만 40분을 쓴 적도 있어요. 한 회기를 그렇게 예고편으로만 날려버린 거죠.
"제 친구 A가 있는데, A가 저랑 같은 반이고, B는 2반인데 B는 저랑 태권도를 같이 다니고 A는 피아노 학원을 같이 다녀요. 걔네 둘이 원래 친하긴 했는데 둘이 서로 뒷담화 한 적도 있거든요? 근데 A도 제 뒷담화 하다가 들켜서 저랑 한 번 싸운 적도 있는데, 지금은 화해를 하긴 했는데... 이번주에 A랑 B랑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C가 그러는 거예요. C가 원래 애들 이간질시키기로 유명한 앤 데, 걔가 예전에 D랑 친하게 지내다가 D랑 B 사이 이간질해서 B한테 D 욕하고, D한테는 B 욕하고 그래서 그걸 B랑 D랑 둘이 알게 돼서 세 명이서 결국 한참 메신저로 얘기하다가 진실을 알게 돼서 다 멀어진 거예요. 그래서 저도 C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예를 들어 친구 A가 자기만 빼고 다른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하는 것이 속상하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나마 제가 예시로 든 것이라서 나름 정리가 된 버전이고, 실제로 들으면 문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등장인물은 점점 많아지는데, 인물 간의 관계성은 계속 복잡해집니다. 메모하지 않고 듣기만 하면 나중에는 누가 누구였는지 헷갈려서 머릿속이 하얘져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도대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라는 생각이 속으로 몇 번이나 드는지 몰라요. 저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시려면 메모와 요약정리는 필수입니다.
학생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중요하지 않은 세부 묘사는 적당히 흘려들으면서 중요한 내용만 요약하고 정리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한 번씩 학생에게 요약한 내용을 말해주면서 "네가 하려던 말이 이게 맞아?", "선생님은 이렇게 이해했는데, 이게 맞니?"라고 확인합니다. 중간 점검을 해가면서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점점 큰 맥락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학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수월해집니다. 제가 한 번씩 정리를 해주면 학생도 '선생님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요.
문장 길이가 긴 학생과 반대로 문장을 토막내서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어요. 친구가 자기만 빼고 파자마 파티를 하지 않아서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저랑 파자마 안 해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위 예시가 지나치게 정보가 많았다면, 이번엔 지나치게 정보가 제한되어 있죠. 이럴 때에는 요약이 아니라 탐색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로 상담실을 찾아왔냐는 물음에 학생이 "저랑 파자마 안 해서"라는 답을 한다면, '파자마'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부터 물어봐야겠네요.
주제에서 벗어나 산만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지나치게 자세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이야기하거나, 너무나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학생을 만나게 되었을 때, 저는 답답한 마음을 갖기 일쑤였고 '그래서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라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앞으로도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이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간순서대로 요약정리해서 제게 이야기해주지는 않을 텐데요. 제가 인내하고 집중하고, 요약하고 정리하는 연습을 계속 하는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