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문제로 힘들다며 울면서 상담실에 찾아온 6학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들 간의 미묘한 감정선과 배신, 험담 등 복잡하게 얽힌 사연을 가지고 온 학생이었습니다. 등교하는 것조차 힘들다면서 당장 내일부터라도 학교에 나오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아마 갈등이 있는 친구들과 한 교실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아예 학교를 나오고 싶지 않을 만큼 싫었던 것이겠지요. 울고 있는 학생을 우선 진정시키고 천천히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지금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지금 학생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학생과의 상담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세 번 정도 만나고 상담을 종결했어요. 다행히 상담이 이어지는 동안에 친구들과의 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학생도 다시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상담이 종결되고 나서 복도에서 학생을 종종 마주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쓱 피하더니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듯 하는 게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나를 못 알아봤나? 아니면 못 본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니었어요. 분명히 저를 봤지만 모른 척한 것이었죠.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상담 회기가 짧기는 했지만 자신이 가진 이야기를 솔직하게 제게 해주었던 학생이었어요. 게다가 고민하던 문제도 해결되어 잘 지내고 있는데,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 저를 모른 척하거나 어색해하는 학생은 이 학생만은 아니었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찾아왔던 학생과의 상담 끝에 자살에 대한 생각이 줄어들고 일상으로 돌아가 잘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그 아이도 상담이 다 끝나고 나서 상담실 밖에서 마주칠 때면 쭈뼛거리며 인사를 하고는 했어요. 어쩐지 저를 마주치는 것이 그 학생에게는 불편한 일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 외에도 꽤 많은 학생들의 외면을 받는 처지랍니다.
상담실에서의 라포도 잘 형성되었었고, 상담도 잘 마무리가 되었는데 상담이 끝나고 나면 나를 불편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어요. 그 생각 끝에 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에 교내 상담실에서 심리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상담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주신 분이고, 그 분과 보낸 상담의 여정은 제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교내 상담실이다 보니 상담 종결 이후에 교정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 번씩 그 선생님을 마주치게 될 때가 있었는데요. 참 이상하게도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기에는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분명 그 선생님과의 기억은 좋은 것이었는데도요. 상담실이라는 공간에서 상담 선생님을 마주할 때와 그 밖의 공간에서 마주할 때의 기분은 분명 달랐습니다.
상담이 잘 끝난 이후에 상담실 밖에서 마주치면 쭈뼛거리던 이유, 그건 상담이 필요 없는 상태로 잘 지내고 있다는 신호였어요. 제가 겪은 내담자 경험에 비추어봐도 그렇습니다. 상담실에서는 나의 치부가 드러납니다. 물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내담자의 선택이기는 하지만요. 상담실은 나의 약하고 숨기고 싶은 점들과 마주하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공간이지요. 따지고 보면 상담 선생님은 나의 절친한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타인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상담실이라는 인위적이면서도 안전한 공간에서 잘 모르지만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하는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함께 그 주제를 다루어 나갑니다.
우리는 때로 여행길에 만난 모르는 사람에게 더 솔직해 지고는 하죠. 찾아보니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보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과 같은 낯선 이에게 사적인 일이나 고민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제가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학생의 일상을 함께 하는 개인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자신의 비밀이 새어나갈 위험이 적어서 친구나 가족 앞에서보다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존재. 그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떠난 뒤에,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방인을 일상 속에서 마주치게 되면 저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게다가 지금 그 이방인의 존재는 더 이상 필요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다면 더더욱이요.
상담실 밖에서 쭈뼛거리는 학생을 볼 때면 '이제 상담실에 올 필요가 없어졌구나. 잘 지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 마음 한편에 고개를 내밀었던 서운함이 사그라들어요. 성급한 일반화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상담 선생님들은 인정 욕구가 높은 편이에요. 저를 비롯해서요. 대학원 가서 공부하고, 자격증 취득하고, 계속 연수를 듣고 공부하는 모습만 봐도 영 인정욕구가 낮은 집단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이 되지요. 그렇다 보니 상담실에서 만나는 학생에게도 좋은 상담 선생님이라는 피드백을 듣고 싶은 마음도 분명 생겨요. 그러나 그 마음과 달리 상담실 밖에서 모른 척 지나가는 학생을 만나더라도 너무 섭섭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오히려 나와 상담한 학생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니, '인정'의 의미로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