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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24. 2023

개성 있는 해변이 많이 있어야 하는 이유

이방인을 환영해 주던 개성 있는 향

개성 있는 해변이 많이 있어야 하는 이유

생애 처음 만난 포르투갈의 여름, 남부 ‘Cascais’ 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뜨거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종착역이었던 Cascais 역을 내리면 최대한 가벼운 옷차림과 최소한의 짐을 어깨에 맨체 흥겹게 앞장서 가는 현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쫄래쫄래 따라간다. 그들과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 한 구석이 자유로워진다. 기차역을 나서서, 길거리 곳곳에 심어져 있는 야자수 나무, 해변가를 더 빛내는 경쾌한 노랫소리, 채도 높은 알록달록한 건물들을 지나 맑은 햇살이 비추는 푸른 바다와 해변을 향해 걷는다. 상상만 해도 흥겹고 후끈한, 그럼에도 시원한 여름의 향은 기차역에서 해변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부터 마음과 몸을 시원하고, 가볍게 만들어준다.


이곳의 해변가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자신을 감추는 대신에, 본인의 개성과 취향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이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가져와 야금야금 읽고, 또 다른 이는 무언가를 끄적이며 사색을 하고, 누군가는 태닝 오일을 잔뜩 바른 몸을 햇빛에 예쁘게 굽고 있다. 그러다 뜨거움을 느끼면 잠깐 일어나 모래를 툭툭 털고 시원함 속으로 이끌려간다. 이처럼 바다가 주는 분위기에 녹아 잔잔한 시간을 보내는 무리와 반대편으로는 삼삼오오 모여 공놀이를 하거나 파티를 하는 무리가 마주하고 있다. 잔잔함과 흥겨움이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곳, ‘Cascais 해변’이다.


해변이 풍기는 특유의 고유한 향이 있다면, 그 향을 공유하는 그들을 만날 때도 은은히 풍겨지는 향을 맡을 수 있다. 해변가에 살고 있는 이들은 각자 개성 있는 향을 갖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향을 공유하고 있다. 다행히도 그 향은 꽤나 개방적이고, 이방인을 환영해 준다. 처음 맡아보는 향에 당황해하는 이방인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스며들도록 가볍게 다가와준다.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로 스며들어 비치타올을 펼쳐두고, 그 위에 가벼운 옷차림 상태로 누워, 그날의 감정에 따라 편하게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된다. 해변은 타인을 신경 쓸 필요도, 타인을 바라볼 필요도 없이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도록 여유를 선물해 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은 향을 공유하고 있다. 이 하나 된 향이 좋아서, 해변을 개성 있게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해변 마을이 참 사랑스럽다. 나도 언젠가는 사랑스러운 해변에서, 시원한 자유와 사랑의 향을 은은히 풍기는 사람이 되어있기를.


이것이 생애 첫 포르투갈의 여름이었고, 대서양의 여름은 나의 삶을 여름으로 만들어 주었다.  


Cascais역에서 내려 알록달록한 건물들을 지나면 만나는 개성있는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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