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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5. 2023

맨몸으로 수온 14-15도에서  수영하기

나의 도파민의 근원

맨몸으로 수온 14-15도에서 수영하기

사실 그렇게 차가울지 몰랐다. 아직은 시원한 온도를 풍기고 있던 5월 중순쯤, 코토르만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돌산이 만들어 낸 거대한 그림자들 때문인지, 흐린 날씨 탓인지 더욱 물은 차갑게만 느껴졌다. 체감상, 4월 포르투갈 바다에서 느낀 수온과 비슷했지만, 그때는 웻슈트를 입고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susan은 추운 겨울날에도 슈트 착용 없이도 물속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일 년 전쯤 j.m. 배리 <여성수영클럽> 책에서만 읽었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내 눈앞에 있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이 든 할머님들께서 몇 십 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야외 연못에서 꾸준히 수영을 즐기며 나누는 여러 삶의 이야기이다. 이제부터, 책 속 주인공이 현실 속에서 곧 한 명 더 추가될 예정이었다. 새 주인공은 여태껏 한 번도 차가운 물에서 맨몸 수영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겉으로는 꽤 덤덤한 척했지만 수영할 장소로 가는 길에서도 약간 쌀쌀했던 터라, 물은 얼마나 차가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덜덜 떨고 있었다. 큰 요트를 타고 깊이 들어가서, 작은 배에 옮겨 탄 우리는 보트에서 점점 더 멀리 떨어져 만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수영할 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가슴에 물을 서서히 적셨고, S는 주저 없이 곧바로 수온 14-16도 사이를 넘나드는 물속으로 첨벙첨벙하고 뛰어들었다. ‘와, 실화야!?’


버디가 벌써 물에 뛰어들었는데, 나 혼자 춥다고 배 위에서 동동 발을 구를 수는 없는 처지였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더 이상 주저 말고 바다로 두발을 집어넣고 풍덩 멋없게 입수했다. 머리까지 물을 담근 후, 수면 밖으로 나와 환호성과 비명 사이의 무언가를 크게 외친 후 우린 곧바로 수영을 시작했다. 물속을 헤엄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매우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하고 싶어 물속으로 들어온 나와 s의 물에 대한 사랑, 추위를 이겨내는 그 진심과 열정에 나조차도 내게 혀를 내둘렀다. ‘우리 정말 물에 미친 사람들이구나.’


처음 만나본 수온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더디게 걸리긴 했으나, 다행히 익숙해지긴 하였다. 호흡할 때마다 보이는 양옆으로 펼쳐진 검은 산과 산 사이로 자리 잡고 있는 주황 지붕의 마을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물과 한 몸이 되어있었다. 방심한 틈을 타서 잠깐의 추위가 또 찾아오려 할 때는 재빠르게 발차기를 더 세게 하면서 추위가 찾아오는 걸 막아냈다. 어떻게든 해내 보겠다는 나의 의지와 더불어 옆에서 든든히 함께 수영하고 있는 s, 언제든 추우면 나를 들어 올려줄 작은 보트가 따라오고 있었다. 덕분에 웻슈트 없이 처음으로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최저 온도에서 바다 수영을 해내게 되었다.


다시 같은 여건으로, 최저 온도에서 웻슈트 없이 수영하는 이 순간이 찾아온다면 도무지 쉽게 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못할 거 같다. 그만큼 정말 차가웠고, 쉽지 않은 코스이긴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수영하는 걸 도전해 보는 걸 추천하는 이유는 딱 이 한 가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희열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시간가량 수영 후, 한구석에 마련된 철봉을 잡고 철썩이는 파도 사이로 하나씩 다리를 타고 발을 올려 땅에 두 발이 닿았을 때, 함께 해낸 S와 하이 파이브를 하며 비명이 아닌 환호성을 질렀을 때의 그 짜릿한 감정은 아직도 생생할 정도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바다가 그동안 선물해 준 수많은 생생한 감정들 사이로 늘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감정이 하나 있다. 웻슈트 없이 낮은 수온에서 장거리 수영을 해내고 느꼈던 그 짜릿한 희열감 말이다. 어쩌면, 나의 유일한 도파민은 이러한 순간에서 분비되는 것 같다. 흔히들 즐겨보는 숏츠 영상, 유튜브 속이 아닌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수온과 파도에서 즐기는 수영 속에서 도파민을 느끼는 사람이지 않을까.


5월 중순의 바다에서 맨몸수영
나의 유일한 도파민, 오픈워터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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