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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6. 2023

몬테네그로에서 쓴 일기장 모음 zip 2

몬테네그로에서 쓴 일기장 모음 zip2

#. 바다가 일상인 마르코네 In bokabay, Montenegro

세계 바다를 누비며 오픈워터 수영을 즐기며 느끼고 배우는 점들이 ‘수영’과 관련된 그 자체뿐 아니라 그때 함께한 사람들, 분위기에 대한 감정들이 무수히 많다. 하루는 몬테네그로 코토르 ‘bokabay’에서 수영하러 Susan과 만나는 날이었다. 그때, 감사하게도 S의 친구 부부께서 수영할 장소까지 픽업을 해주겠다며 흔쾌히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수영 장소로 픽업을 해주는 건데 웬 집으로 초대한다는 거지 싶을 거다. 그들의 집은 바다 위의 요트였다. marko네 부부는 은퇴 후,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나서 요트를 하나 사서 유럽의 바다를 둥둥 여유롭게 여행하며 살고 계신 호주 사람들이었다. 생에 처음 보는 삶이었고, 비현실적인 드라마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터라 요트 타고 여행하는 삶은 꿈조차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비현실적인 삶을 현실 속으로 들여와서 살고 있는 마르코네 부부를 보니 생각이 확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 더 맞는 거 같다.


‘아, 요트 타고 다니며 몇 개월 동안 바다 위에서 지내면서 바다에 들어가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다이빙해서 수영하고, 둥둥 떠다니고 싶을 때는 패들 보트를 타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바베큐파티를 하고, 태닝 하고, 책 읽거나 글 쓰며 사색까지 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한 거구나.’


바다가 일상인 그들은 마치 바다를 볼 때 느끼는 그 고요함과 마음을 녹이는 편안함을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의 얼굴만 쳐다봐도 저절로 미소를 짓고 행복해 할 수 있었던 게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얼굴을 계속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다가 풍기는 향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어서.


요트타고 세계여행하시는 Makro 부부와 함께한 Bokabay tour

#. 다시 찾아가게 되는 바다 In Miloer beach, Montenegro Budva

난 쉽게 정에 드는 편이다. 그 관계가 사람이든, 장소이든 관계없이 모든 것에 말이다. 한 번 정을 느끼게 되면 그 대상에서 당분간 헤어 나오기 어려워한다. 최근에는 홀로 이곳저곳 바다 여행을 다니면서부터는 정이 드는 장소가 많아졌다. 그중 한 곳이 바로 ‘Miloer beach’이다. 처음 이곳에 오게 된 건 수영 버디 S 덕분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 해변에 오려했던 건 아니었다. 원래는 관광객에게 널리 알려진 ‘Sveti stefan’ 비치로 향했다. 그 바다도 물론 굉장히 아름다웠지만 그날 유독 배가 많이 다녀서 배를 피해 다니며 수영을 해야 할 거 같아 행선지를 옮겼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야 발견할 수 있는 Miloer beach로 향했다. 이 두 비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마법 같은 숲길을 지나 도착해서 들여다보게 된 Miloer beach에 바로 반해버렸다. 지금까지 다녀본 바다 중에서 세 손가락 중 검지손가락에 꼽는 바다가 포르투갈 리스본의 Sesimbra 바다이다. Miloer beach에서 살짝 'Sesimbra'의 모습이 겹쳐 보여 더더욱 반가웠던 바다였다. 깊숙이 더 들어갈수록 서서히 변하는 바다 색깔과 잔잔하면서도 적당히 쳐주는 파도와 Sesimbra에서 반했던 바다 안에 있는 절벽, 수많은 물고기들의 매력에 푹 정이 들어버렸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서도, 수영 후 해변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올 때도 든 생각은 ‘아, 내일 다시 와야겠다.’ 이뿐이었다. 결국, 이 바다는 다음 날 원래 이동하기로 해두었던 알바니아행을 취소하게 만들었고 몬테네그로 부드바를 더 느낄 수 있는 여유 속으로 초대해 주었다.


다음 날, 다시 찾아간 Miloer beach는 전날보다도 더 많은 감동을 안겨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찾아가게 되는 바다, 찾아가고 싶은 바다, 손가락에 자신 있게 꼽을 수 있는 바다들이 생기는 때의 감정은 형용할 수 없다.


원래 이곳에서 수영하려고 했던 'Sveti stefan'
짧은 시간에 많은 정이 들었던 Miloer beach

#. Meter 집착 In Miloer beach, Montenegro Budva

수영장과 오픈워터 수영의 다른 점 중 하나는 바로 ‘거리 계산’이다. 몇 년 동안 수영장에서만 수영하다가 최근 들어 오픈워터 수영을 즐기게 된 이후로,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일종의 강박관념이랄까, 굵직한 습관이 몸속에 배어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Meter 집착’이었다. 수영장에서는 보통 최소 1.6K 이상을 꼭 하고 나오는 기존의 루틴을 늘 지켜내고 있었다. 애플워치 등 전자시계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머릿속으로 수영장 벽을 치고 턴할 때마다 ‘오케이,  200, 400, 8000, 1k, 2k, 됐다.’ 계산하며 수영하곤 했다. 이렇게 목표한 M를 다 채우고 물 밖으로 나올 때면 느낄 수 있는 그 상쾌함이 있어서 그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매일매일 그렇게 꾸준히 즐겼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정확한 거리 측정을 하기 어렵다. 물론 전자시계가 있는 사람들은 측정하곤 하지만 늘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바다는 레인도, 수심도, 폭도 모르는 광활한 자연 수영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가늠은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처음엔 그저 순순히 얼마큼 수영을 했을지 궁금해하는 호기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매번 바다에서 나올 때마다, 심지어 바다를 바라보는 중에도 ‘오늘은 ‘몇 미터 하겠구나.’, ‘적어도 1k는 하려면 여기서 저기까지 몇 번 왔다 갔다 해야겠구나.’ 등 계산하고 있는 자기 모습을 인지하고 나서부터 ‘이건 좀 집착이다.’ 동시에 ‘내려놓자’라는 마음을 새로 잡게 되었다. m계산을 하는 게 무조건 집착이고, 안 좋다는 말이 아니다. 충분히 수영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거리를 계산하며 점차 늘려가야 도움이 되는 게 맞다. 하지만 바다 수영은 그 결이 다르다는 걸 안 이후부터는 더 이상 M에 집착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바다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함께한 버디가 이런 말을 부담 없게 들을 수 있도록 가볍게 흘려주었다. “여기선 M 생각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만큼 즐기면서, 최대한 즐기기만 했으면 좋겠어.”

지금 와서 그 순간을 반추해 그의 생각을 읽어보면, 그도 나처럼 느꼈던 적이 있었거나 수영장 수영을 오래 해온 사람의 특성을 알고 있었기에 더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컸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허, 스윗한 친구일세.’


바다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거리에 대한 집착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더 즐기는 거에 초점을 두길 바랐던 게 아닐까 싶다. ‘참 고마운 친구네.’


나도 이제 오픈워터 수영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가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것처럼 무겁지 않게,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가볍게 최대한 가볍게 하지만 다음에 나의 말이 떠올라 지금의 나처럼 깨달을 수 있도록 말해줘야겠다.


“우리 오늘은 기존에, 수영장에서 해왔던 수영 거리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파도에 몸을 맡기며 즐겨볼까요, 우리”


M 생각 안하고, 그저 즐기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Miloer beach

#. 항상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로 오는 그와 나 In Slovenska beach, Montenegro Budva

처음 ‘부드바’라는 곳에 도착한 5월 22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재빠르게 짐을 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장 가까운 비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간대였기에 바닷물이 그리 따뜻하지 않았음에도, 먼 길을 이동한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날씨와 분위기, 노을에 못 이겨 다소 차갑지만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나왔다.


짜릿한 감정을 느끼며 수영을 빠르게 하고 나와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파란 수영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무릎까지 물속에 담근 후, 잠시 수온을 느끼고, 바로 물속으로 온몸을 풍덩 집어넣었다, 부드럽게. 그를 바라볼 때 문득 궁금해졌다. 나도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을 때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지금 내가 그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일까 하고.


서서히 차가운 수온에 익숙해지며 물과 몸이 하나가 되어 그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없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는 그를 보면서, 혼자만의 오롯한 공간에서 하루를 시원하게 정리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물밖에서 바라보는 나에게도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뻥 뚫린 곳에 바다가 전해주는 따스함이 곧바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는 참 자유로워 보였고, 그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첫 만남부터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확고함과 자유로움 사이로부터.


부드바 여행의 첫날, 이틀, 사흘째, 6일째 되는 날까지 그는 늘 한결같이 그곳으로 왔다. '어떻게 항상 한결같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바다로 오는 걸까?' 하며 감탄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를 한결같이 마주하는 나도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로 오곤 했다. 그렇게 우린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시간대에 같은 비치에서 시원한 만남을 공유했다.


노을이 질 때쯤, 자리를 떠나던 우리 In Slovenska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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