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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7. 2023

'물욕(물을 향한 욕심)'이 되지 않아야 해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미안하고 고마웠던 친구

Intro.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미안하고 고마웠던 친구

몬테네그로에 이어 다음 여행지를 찾아보던 중, 지도 속 ‘오흐리드(Ohrid)’가 눈에 띄었다. 예전에, 여행 취향이 비슷한 한 언니로부터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Ohrid)’에 가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때 처음 들어본 지명 때문인지 한참이 지나도 그곳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오흐리드는 호수도 품고 있었기에 수영까지 할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였다. 따라서, 이번에도 단순히 물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던 몬테네그로를 떠나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로 새 친구를 사귀러 갔다.     

 

오흐리드는 ‘오흐리드 호’라는 바다 같은 큰 호수를 간직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보낸 일주일은 짧았지만, 깊은 정이 들었다. 7일간 인상적이었던 것을 하나 꼽으라고 묻는다면, 처음으로 ‘물’이 아닌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이 마을에서는 오흐리드호처럼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호수처럼 맑고, 숨김없는 민낯 그대로 타인을 대하며 사랑으로 가득 포용해 주었다. 사람들을 통해 얻은 사랑 덕분에, 여행 중 무너질 뻔했던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었고, 따뜻한 기억을 가진 채 다음 여행지로 행복하게 떠날 수 있었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온 날, 집에서 해 먹을 재료를 사러 주변 마트 ‘ramstore’를 다녀왔다. 그때, 식용유를 고르던 중,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분명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어딘가에서부터 친밀감이 흐르는 그분과 두 눈이 마주쳤다. 서로 갑작스러운 만남에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수박이 바닥에 떨어져 눈이 휘둥그레지시던 한국분이셨다. 여행자의 발길이 흔하지 않던 아담한 마을 오흐리드에서 말이다. 그동안 유명한 나라, 관광지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인지 한국인을 만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잠깐 마주치는 한국인이 한두 명 정도 있었지만, 추상적인 안부 인사 정도만 주고받고 그대로 인연을 끝맺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한국인을 의도적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인연을 굳이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흐리드의 작은 마트에서 K 선생님과 P 선생님을 뵈었을 때는 신기하게도 무척 반가웠다. 마치 그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두 분의 환한 인상을 통해, 바로 좋은 사람일 거 같다는 정확한 직감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거리낌 없이 인사를 나누었다.     

“어! 한국분이세요?”

“네, 맞아요! 저는 지금 장기 여행 중이에요. 여행 중이세요?”

등 이야기를 짤막하게 나눈 후, 잠깐이나마 동네 이웃이라는 기쁜 소식을 확인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잠시 흥분을 가라앉혔다.     


며칠 지나지 않아, 비가 억수로 내리는 오후에 K 선생님을 다시 뵈었다. 오흐리드에서 보냈던 한 일주일가량, 하나둘 선생님과의 추억이 쌓여갔다. 서로 약속에 얽매이는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연락을 하여 부담 없이 만남을 이어 나갔다. 처음 마트에서 만난 후, 호숫가 주변을 함께 산책한 순간이 엊그제 같았음에도, 어느덧 떠나는 시간이 다가와 버렸다. 헤어지기 전날, 서로를 차츰 알아가기 시작했던 호수 산책을 다시 한번 같은 코스로 걸으며 함께 여행을 정리했다.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끈끈한 관계로 이어지고 있던 덕분인지 떠나는 날이 올수록 마음이 괜히 묘하고, 무거웠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헤어지기 어려운 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순리인가 보다. 결국 떠나는 당일 아침, 이대로 가기 아쉬워서 선생님 댁에 다시 찾아가서 아침을 함께하고 전날 밤보다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떠났다.      


선생님과 어떻게 지금처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지 반추해 보면, 무엇보다도 서로의 성격이 잘 맞았고 좋은 분이라고 느껴졌기에 자연스레 마음이 선생님께 푹 닿았던 거 같다. 또, 곁에서 늘 사랑을 주시던 선생님의 진심이 닿아, 지금의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인지, 서서히 길어지는 장기간 여행의 피로 탓인지, 이 모든 상황에서 따스한 K 선생님을 뵙게 되어서인지 그동안 몸에 억누르고 있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 생전 없던 비염과 같은 알레르기가 생겨 매일 충혈된 눈을 비비고, 코를 풀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부에 걷잡을 수 없는 붉은 알레르기가 생겨버렸다. 이런 안 좋은 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나다 보니 아름다운 호수는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고, 물을 볼 때면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다. ‘난, 어차피 못 들어가.’      


안 좋은 상황을 이겨내려고 억지로 이를 악물고 여행하다 보니, 오흐리드에서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2일 정도 남은 즈음이었다. 감사하게도, 처음 겪어보는 일들에 혼란스러워하는 때부터, 정신을 차릴 때까지 K 선생님께서는 늘 내 곁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셨다. 그래서일 것이다. 오흐리드를 떠올리면 유일하게 물이 아니라 ‘사람’이 떠오르는 이유가 말이다. 물을 보고 찾아간 오흐리드에서 정작 물과 함께 보낸 시간은 적었지만, 오흐리드호만큼이나 마음이 넓고 따스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따라서, 오흐리드를 떠올리면 전자의 이유로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준 땅이기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친구이다. 지금부터, 이장에서는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마을에서 맺은 우정을 꺼내어 보려고 한다.


K 선생님, 보고 싶어요 :)

물욕이 되지 않아야 해

유럽 공원을 상상해 보면 흔히들 잔디밭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상상 속에 있던 그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돗자리를 깔지 않고도 벌러덩 누워있거나 겉옷을 돗자리 삼아 펼쳐놓고 앉아있는 그들을 보면서 자유롭다고 느꼈다. 평소에도 산이나 숲 속에 들어가서 홀로 의자에 앉아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 자연을 가까이하는 삶이 좋았다. 그들처럼 잔디밭 아무 데나 누울 수 있는 자연인이 되고 싶었지만, 내 몸은 알고 보니 도시인이었다. 항상 갖춰진 한국식 자연 속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오흐리드 호숫가에 갔다가 무언가에 물렸는지, 호수로 향하는 숲길에서 꽃이나 풀에 스쳐 풀독이 오른 것인지 무릎 한가운데 알레르기가 생겨버렸다. 초반에는 며칠 뒤에 사라질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탓에 심각성을 느꼈다. 결국은 동네에 있는 여러 약국을 다니면서 서너 개의 바르는 약을 받고, 약사를 만날 때마다 물어보았다. ‘혹시 병원에 가야 할 정도일까요?’ 한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곧바로 피부과에 가서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에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해외에서 병원까지 가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상태의 원인은 모르겠고, 물과 놀고는 싶은 복합적인 마음에 심리적으로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크게 아팠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많은 생각이 들었고 더할 나위 없이 몸도 마음도 약해졌었다.     


더군다나, 물에서 수영하고 싶어서 온 도시였는데 원인 모를 알레르기 때문에 수영도 못 하게 되니 속이 크게 상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길어야 일주일 정도 물에 못 들어가는 거 하나 가지고 크게 낙심하고, 답답해했던 것이다. 마케도니아 여행을 마칠 때쯤 깨달았다. ‘아, 혹시 지금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걸까?’ 돌이켜 보니, 바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매일 빠짐없이 바다에 들어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갑작스레 깨진 일상생활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이러한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곧바로 마음가짐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물을 좋아하는 건 좋지만, 물을 향한 강박, 즉 ‘물을 향한 욕심, 물욕’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자고 말이다. 물욕을 뜻하는 본래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지만, 재물을 탐내는 마음 대신 물을 탐내는 마음을 느끼고 있는 내게 딱 적절한 비유였다. ‘물을 향한 욕심, 물욕이 되지 않아야 해.’          

지금도 가끔, 수영을 못하고 지나가는 나날에 스트레스받으려 할 때면, 스스로 만든 이 용어를 떠올린다. ‘즐기는 건 좋지만, 물욕이 되지 않아야 해.’라고 말이다.


하지만, 물욕이 생길 수 밖에 없던..Ohrid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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