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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6. 2023

몬테네그로에서 쓴 일기장 모음 zip 1

Part 1

몬테네그로에서 쓴 일기장 모음 zip 1

#. '후진 수영', 결국 오늘도 윤슬에 졌다. In Slovenska beach, Montenegro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저녁 6시부터 나의 생체시계도 서서히 해변으로 가라고 나침반을 가리킨다. 못 이긴 척짐을 싸 들고 오늘도 찾아온 ‘Slovenska beach’, 곧바로 물속으로 풍덩 입수하면 밖에서 봐도 아름다운 윤슬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윤슬 앞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해변을 향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에도 등 뒤에서 이글거리며 더 진해지는 윤슬이 보내는 열기에 또다시 못 이기는 척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서서히 윤슬로 또 향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윤슬과의 거리를 즐겨본다. 갈수록 해변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며.


그러다 ‘이젠 진짜 갈 거야’하고 인사한 후 해변으로 향한 지한 30초 지났을까, 윤슬이 등 뒤로 똑똑 두들기는 노크에 또 뒤돌아선다. ‘그래, 내가 졌다.’ 결국은 윤슬에 졌다. ‘계속 널 보면서 갈게.’하고 후진 운전이 아닌 후진 수영을 하며 겨우겨우 제자리로 돌아온다. 늘 홀로, 이렇게 바다와 우정을 나누었다. 혼자 어떻게 바다에서 매일 잘 놀 수 있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흔히들 물어본다. 하지만 바다, 파도, 햇빛, 자연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그 누구와 노는 것보다 편안하고 훨씬 재미있다. 바다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면 훨씬 이해하기 편할 거 같다.


등 뒤로 비치는 윤슬이 아름다운 Slovenska beach

#. 바다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 '바람' In Vapore beach, Montenegro

그날도 한결같이 바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바람이 이런 생각을 보내주었다. 온도는 분명 25도, 뜨거운 햇살이 더해져 더운 날씨인데, 숫자만큼 덥지 않은 이 날씨는 뭘까. 계속해서 아리송한 감정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릿속을 휘감았다. 바다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엉켜있던 감정이 챠르륵 풀리며 깨달았다. 아리송한 감정의 주인공은 ‘바람’이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이 바람은 ‘강강’으로 불어오는 바람도, ‘강’으로 불어오는 바람도 아니지만 더위가 날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약’에서 ‘강’으로 서서히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더워야 할 날씨에도 덥다는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서서히 더위가 알아서 바람을 따라 날아가기 때문에.


그 바람 덕분에 오늘도 기분 좋게 바다에 잘 도착했다.


오늘도 기분 좋게 도착한 Vapore beach

#. 태닝을 즐길 줄 아는 아이들 In Vapore beach, Montenegro

가끔 선베드에 누워있거나, 비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구경할 때 흠칫흠칫 놀라며 감탄할 때가 있다. 아주 작고 귀여운 아이들 때문에 말이다. 꼬마 아이들이 넋을 놓고 바다와 모래사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꽤 많이 봐왔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유독.  엄마와 아빠 옆에서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만끽하며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아이들을 볼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들은 지금부터 벌써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줄 알고, 여유가 무엇인지 아는데 과연 커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떠한 훌륭한 사람이 되어있을까?’하고. 다른 건 모르겠으나 이점 하나는 조금 자신 있게 확신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은 먼 훗날, 삶에서 처음 겪어보는 것들에 부딪혀 지치거나 힘들 때마다 혹은 기쁜 날, 행복한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친구가 그리울 때 바다로 찾아오지 않을까. 지금의 나도 그렇다.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우리들 In Vapore beach

#. 만남의 광장, 바다 수영장 In Vapore beach, Montenegro

바다 수영을 즐기러 온 우리는 자연이 만들어 준 바다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주고받는다. 물이 차가운지 전해 주고받는 물속의 사람과 물 밖의 이들, 선베드 자리 남았다고 알려주는 그들과 덕분에 자리를 찾아 해변을 더 편안하게 누워서 보낼 수 있게 된 이들, 그러다 대화가 더 오고 가다가 함께 바다로 들어가 수영을 즐기는 우리, 또 물속에서 홀로 수영하는 이들과 마주칠 때면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묻는 안부 인사 등


아무런 준비 없이 비치로 향하면 자연스럽게 인연이 맺어지고, 바다가 만들어 준 자연스러움 덕분에 더욱 쉽게 가까워진다. 이점이 바로 자연스러운 만남의 큰 매력이지 않을까? 거리낌 없이 민낯 그대로인 서로를 만나 편안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또 하나의 인연이 이어지는 것.


바다에서 주고 받는 만남 In Vapore beach

#. 라즈베리 톤의 사람들 In Budva old town, Montenegro

때마침, 라즈베리와 스트로베리 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우연히, 창가를 바라보던 중 얼굴이 시뻘게진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었다. ‘아마, 강한 햇살에 익숙하지 않던 사람이었을 거야. 아니면 선크림을 바르고 나오는 걸 잊어버렸거나, 혹은 비치에서 드러누워 있다가 뒤늦게 살이 따가워지는 걸 인지하고 선크림 바르는 걸 까먹었거나.’  라즈베리 톤의 피부 원인을 꽤 깊이 추리하며 예상보다 맛있던 젤라또를 마저 음미했다. 그들의 라즈베리 톤의 피부색만 보아도 수만 가지의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나도 그런 순간들을 몇 번 겪고, 지금의 피부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라즈베리 톤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라 귀여운 추억에 젖는다. 


저 창 밖으로 지나다니던 라즈베리 톤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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