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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20. 2023

여행자들이 빠지는 블랙홀

이집트 다합, 설렁설렁한 삶을 선물해 준 친구

Intro. 이집트 다합, 설렁설렁한 삶을 선물해 준 친구

곧 해가 떠오를 컴컴한 어둠 속 새벽에 드디어 아주 낯선 땅까지 이르렀다. 살면서 이 나라에 자발적으로 오고 싶다고 생각할 줄 몰랐다. ‘와, 나 진짜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 새삼 펼쳐지는 이번 여정에 스스로 감탄했다. 앞으로 이 땅에서 생길 특별한 여정들이 기대되었다. 몇 시간 뒤면 모든 게 환하게 밝다 못해, 따가운 햇볕에 온몸이 꺼멓게 그을러 지게 될 ‘이집트’에서의 시간이 말이다. 이집트에 발을 딛게 된 이유는 유일했다. 단지, ‘다합’이라는 땅이 궁금해서 왔다. ‘다합’을 처음 만난 건  유명한 여행 유튜버들 영상 속이었다. 화면으로 수 없이도 봐왔지만, 물이 나의 삶으로 들어오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크게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나와 관련이 생기게 된 것에는 다시 눈길이 가게 되는 법. 다시금 이집트 다합에 관심이 가닿게 되었을 때, 장기간 바다 여행의 정점을 다합으로 찍어보자는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이러한 이유로 그 어느 곳에서 느꼈던 열기보다 뜨거웠던 6월 여름, 첫 아프리카 대륙 속 이집트 다합에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집트 여행’, 듣기만 해도 막막하고 섣불리 바로 떠나기 어려웠던 존재인 만큼 실제로 좋았던 기억만 남아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합’에 다시 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건강한  몸 상태일 경우, 당연히 ‘YES’라고 대답하고 싶다. 더 이상 누군가의 경험이 아닌, 직접 몸으로 느낀 다합 바다는 정말 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환상적인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놀아도 질리지 않던 곳이었다. 결국 이집트 다합 바다는 100% 행복했던 기억만 있진 않지만, 설렁설렁한 삶을 선물해 준 친구이다. 지금부터, 바다 사랑꾼의 성지로 불리는 ‘이집트 다합’ 바다와 맺은 우정을 하나씩 꺼내어 보려고 한다.

나의 첫 아프리카 이집트, '샴엘' 도착

여행자들의 블랙홀

이주 간 다합 살이를 하면서, 저절로 생긴 루틴이 있다. 일단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기분에 따라 느긋하게 일어나거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한다. 여유롭게 일어났다면 요가원으로,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프리다이빙 또는 바다 수영을 하러 나간다. 언제든 바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전날 밤 미리 챙겨둔 수영복과 수영 장비가 든 가방을 멘 채로 나가 아침부터 뜨거운 공기와 인사한다. 아침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라이트하우스’ 동네로 이동해서, 앞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좋은 선베드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시켜 둔다. 일행이 있다면 잠시, 일행이 밥을 먹는 동안 홀로 혹은 그곳에서 만난 수영 친구들과 앞에 펼쳐진 파란 바닷속으로 입수해서 멀리, 더 멀리 수영을 하다가 돌아온다. 대충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채 아직 젖어있는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과 함께 푸짐한 점심을 먹는다.  밥을 다 먹기도 전에 바짝 마르는 이집트 날씨와 함께 낮을 맞이한다.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잠시 푹신한 선베드에 널브러진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일가든’ 동네로 넘어간다. 라이트하우스와 일가든은 서로 가까워서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이다. 한 번 소개받고 갔던 일가든의 한 카페의 단골이 되어, 이주 내내 오후 동안에는 그곳의 선베드에서 선선해지는 오후 5~6시쯤을 만났다. 눕고, 마시고, 잠깐 물속에 들어가서 떼 지어있는 해초를 구경하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나둘 흩어져 있던 다합 여행자들을 만나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온다. 어딜 가도, 부담 없는 외식 가격에 항상 배불리 저녁을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먹곤 했다. 가끔 혼자 저녁을 먹고 싶을 때는 라이트 하우스의 길거리 음식 ‘코샤리 (Koshary)’ 를 파는 아저씨를 찾아간다. 코샤리는 컵밥처럼 생긴 일회용 그릇에 한국인에게 익숙한 맛들이 들어간 이집트 전통음식이다. 특히, 쌀이 많이 있어서 든든한 코샤리와 함께 앞바다 위 설치된 그물망에 털썩 앉아 홀로 저녁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와 함께 추워지는 수온에 서서히 사람이 빠져나오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반대로,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는 서로 이미 알고 있는 하루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온 하루였음에도, 나의 하루를 상대방의 입을 통해 듣는 건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날 각자 다녀온 바다, 바닷속에서 본 생명체, 해변에서 만난 사람들, 새로 찾은 맛집과 카페 등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만 집중한 대화가 오간다. 또 한국인 쉐어하우스(‘꿔레요 하우스’)에 있을 때는 하루 건너, 계속해서 떠나고 들어오는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헤어지면서 ‘내일 여기(블루홀, 등산하러, 별 보러 등)같이 가실래요?’ 등의 부담 없는 대화가 오간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또 함께 떠나고, 홀로 바다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은 잔잔히 앞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이처럼, 처음 혹은 만난 지 며칠 지난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일행들과 함께 밤을 맞이한다. 그리고 같은 일상이지만 새롭게 펼쳐지는 내일을 맞이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곳 다합에서도, 물 흐르듯 설렁설렁한 하루를 보냈다. 유유자적하며 보냈던 몬테네그로에 이어서 만난 다합 바다에서는 더욱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이미 바다에 많이 익숙해진 덕분에, 물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여유가 몸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간 쌓아온 여유가 다합에서 빛을 발하여 다합처럼 예쁜 바닷속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심심하면 언제든 이 세계를 보러 물속으로 들어가는 바다 여행자가 된 것이다. 헤엄을 치다가, 잠시 수영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면 이곳저곳에서 프리다이빙 연습을 하는 사람과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는 사람, 바닷속 저 깊은 곳까지 내려다보일 정도로 맑은 덕에 수심 깊은 곳에서 유영하고 있는 스쿠버 다이버를 볼 수 있었다.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물고기 떼와 대뇌처럼 생긴 산호(‘brain coral’)는 설명을 덧붙일 필요 없이 아름다웠다. 황홀한 세계의 바다를 온전히 만끽하느라, 다합의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은 5g 속도로 흘렀다. 수도 없이 끊기는 전기와 달리, 물의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잘 흘러갔다. 인생에서 가장 길게 많이 널브러져 있던 시기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닌 이 주간의 다합 생활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다녔던 여행자조차도, 다합 바다를 만나면 삶의 여유를 만끽하게 되고, 사람이 평온해지고 걱정이 없어지는 신기한 지역이다. 이점이 다합의 강점이자,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더 많은 다합의 매력이 있지만.


다합의 아침
다합의 뜨거운 정오
다합의 선선한 오후
다합의 잔잔한 밤과 하루 마무리
이전 15화 바다와 호수 수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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