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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20. 2023

아등바등 다합에서의 1주 차

"No swim during the day"

다합에서의 1주 차
'이럴 때, 정신이 멍할 수 있어요. 장기 여행하다 보면 한두 번 힘든 시기가 찾아와요. 깊은 한숨 쉬고, 마음 차분히 가라앉히고 긍정적으로 이 여행 시작할 때 마음 생각해 봐요. 조금 있으면 집으로 갑니다.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고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남은 일정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마음 다시 잘 잡아 보아요.'  -오흐리드에서 뵌 K 선생님의 연락 중 일부-

결국, 스스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기대해 왔던 ‘다합’에서 크게 아파 버렸다. 낮 온도가 거의 40도에 이르는 남다른 열기와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모래바람과 건조함, 타들어 갈 거 같은 대낮의 햇볕 탓인지 그동안 씩씩하게 잘 견뎌주던 몸이 크게 무너져 내려갔다. 초반에는 적응을 못 하는 몸의 반응을 애써 외면하고, 하염없이 물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신기하게도, 물 안에 있으면 전혀 아프지 않았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 밖으로 나올 때마다, 몸 상태는 행복과 정반대였다. 어쩌면 물 밖에서 바라보는 상태가 현실의 모습이었지만, 그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물 안에 있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따라서 기대하고 기다렸던 다합 여행을 반추하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주 차는 아픈 상태를 마주하고, 민낯 그대로의 감정에 허덕이며 아등바등 버티려 했던 주간이었다. 반대로 2주 차는 모든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설렁설렁 하루를 보내며 건강을 되찾아 가려고 노력했던 한 주였다.


다합에 도착한 지 이튿날 되는 오후,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병원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몸 상태를 잘 들여다보면서 여행을 해왔다고 여겼다. 하지만 몸에서 안 좋은 신호를 보낼 때면 계속 놀고 싶은 마음에 물로 숨어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던 다합에서 병원에 다녀온 이후 당분간 햇볕이 뜨거운 시간대에는 수영하지 말라는 통보를 전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No swim during the day(낮에는 수영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고, 사람이 이리 급작스럽게 우울해질 수 있구나를 배웠다. 그날은 좌절하고 울고, 스스로 실망을 느꼈다. 동시에, 잘 놀 수 있는 자신이 있음에도 지쳐있는 몸에 답답함과 분노도 받아들여야 했다.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바탕 지나간 후에는 처음 보는 나의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아픈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몸이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던 거니까, 무시하지 말자며 ‘회복’에 온전히 집중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을 정리한 후,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면 안 되고 수영장 수영은 하지 말라고 하신 의사 선생님의 당부를 잘 듣기 위해 노력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대에는 숙소 근처에 있는 ‘German bakery’ 카페에 가서 일기장을 끄적이거나, 밀린 항공권 정리 등 여행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다시 숙소로 재빠르게 돌아가서 낮잠도 자고, 괜히 유튜브 영상도 들여다보며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비록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없었지만, 더 열심히 삼시 세 끼와 과일을 틈틈이 잘 챙겨 먹으면서 말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입이 쉬지 않은 채, 애타게 저녁을 기다렸다.


저녁을 유일하게 기다린 이유는 재차 확인받았던 바다 수영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유일하게 바다 수영은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No swim in the pool. but, it’s okey in the sea” 수영장은 안 되는데 바다 수영은 된다고 하시는 말씀이 왠지 모르게 찝찝했던 건 맞다. 속으로 역시 다합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바다와 함께 살아서 그런지, 바다를 치료제로 생각하는 건가 싶었다. 아무튼, 물을 즐길 수 있다는 소식에 내일 밤 워터파크 가서 설레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있었다. 그렇게 매일 해가 질 무렵, 터벅터벅 슬리퍼를 끌고 다합 앞바다로 나갔다. 하루 중, 유일하게 주어진 바다와 보내는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이다. 바다에 도착하면 곧바로 카페에 짐을 맡기고, 물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해가 지려고 할 무렵, 이제 나의 시간이라는 신나는 마음으로 바닷속으로 향한다. ‘풍덩’, 파도와 수많은 돌끼리 맞부딪혀 철썩이는 소리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코로 뿜어져 나오는 보글보글 숨소리에 집중하며 잠수하는 그 순간이 참 위로가 되었다. 한낮 동안 누워있었지만 전혀 풀리지 않던 피로와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스르륵 파도를 타고 멀리 나가는 느낌을 전해 받는다. 저 멀리 펼쳐진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매일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다합 앞바다로부터.


병원에 다녀오면 늘 먹고 개처럼 늘어져 있던 그 당시의 나
나의 치료제, 다합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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