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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민 HEYMIN Oct 27. 2024

버거는 문화다

햄버거편 2

(지난 1편에 이어)




버거와 다시 만난 이야기 :

오랜만이야
문래동 그 집에서 만날까?


하지만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한 법.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햄버거와 재회하게 된다. 문래동 어느 수제버거집이었는데, 핫한 골목에 위치한 ‘양키스 버거 앤 피자'라는 가게다.

그 집 버거는 그냥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진짜 맛있는 음식’이었다. 매장이 힙하다 못해 너무 힙해서 햄버거를 주문하면, 자동으로 미식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가게였다. 그 집의 시그니처 버거를 베어 무는 순간 절로 눈이 커졌다.


“어라, 이거 내가 알던 햄버거 맞아?”


시그니처 메뉴인 ‘문래버거’는 그야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먹물을 입힌 검은 빵 두 장, 그 사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 튀긴 팽이버섯들.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코 끝으로 전해지는 진한 트러플 향. 수분을 머금은 버섯의 적당한 간과 쫄깃한 식감. 육즙이 가득 흘러넘치는 갓 구운 패티. 이 환상적인 조합은 그동안 내가 맛 봤던 햄버거와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을 선사했다. ‘빠르고 저렴한 패스트푸드’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산산조각 낸 ‘문래버거’는 그냥 그 음식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미식 경험이었다.


비범한 문래버거 비주얼


그리고 문래동이라는 지역이 주는 특유의 감성도 큰 역할을 했다. 문래동은 낡은 공장지대였지만,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힙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동네다. 그 덕에 서울 어느 동네보다 신과 구가 뒤석여 아주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수제버거가 과연 롯데리아, 맥도날드에서 먹는 버거랑 같을 수 있을까? 단순한 음식을 넘어 고유한 공간에서 완성되는 ‘문화적 경험’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햄버거를 좋아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다시 버거 맛에 눈을 뜬 나는 종종 다른 지역의 트렌디한 수제버거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수원에서도, 강릉에서도, 제주에서도! 각 가게마다 특유의 분위기와 독특한 메뉴 구성이 나를 끌어당겼다. 이런 수제버거 가게들은 단순한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햄버거를 한 끼의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재료, 세심하게 조리된 패티, 그리고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인테리어. 수제버거 매장이 갖는 장소성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경험이었다. 나는 이런 매력적인 장소가 버거와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세트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다시 좋아하게 됐다. 어린 시절에는 장난감 딸려오는 ‘어린이 버거세트'에 환장했다면, 이제는 맛 뿐만 아니라 매장의 멋과 분위기까지 딸려오는 ‘어른 버거세트’에 푹 빠져버린 셈이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이나 한국에서 처음 수제버거 붐을 일으킨 ‘이태원 경리단길’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수제버거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힙한 장소로서 단순히 음식을 소비하는 걸 넘어, 지역의 문화까지 제공하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마 이 지점에 ‘우리가 햄버거를 좋아하는 이유’가 꽤나 닿아있지 않을까.


강릉의 초당순두부길에 자리한 '초당버거'
이런 공간이면 버거로 삼시세끼 가능
누가 여길 버거가게로 생각할까. 게다가 강릉순두부길이라니.




햄버거의 진화

불량식품에서 프리미엄식품으로


사실 ‘햄버거와의 재회’는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멀리 하던 햄버거를 다시 좋아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나타났던 현상 중 하나다. 버거가 단순히 '정크푸드'로 치부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건강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 수제버거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햄버거는 미국에서도 ‘정크푸드’로 무시를 받았다. 성인병과 비만의 원인이었고 청결하지 못한 조리환경에 노출된 패스트푸드 이미지가 강한 탓이었다. 그런데 이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건 ‘수제버거’라는 햄버거의 고급화 전략 덕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쉐이크쉑버거(Shake Shack)’다.

쉐이크쉑버거는 2004년 뉴욕에서 작은 핫도그 카트로 시작했지만, 프리미엄 버거의 상징이 되었다. 건강하고 질 높은 재료, 공정하고 투명한 생산 과정을 강조한 이들은 ‘정크’로 전락한 버거의 불편한 이미지를 건강하고 고급스러운 ‘미식’으로 진화시켰다. ‘프리미엄 버거’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고, 다시 사랑받는 음식으로 탈바꿈시켰다.

한국에서도 이 변화는 고스란히 반영됐다. 2016년 서울 강남에 상륙한 뉴욕의 쉐이크쉑버거는 국내 버거 시장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외식업계에 수제버거 열풍을 몰고 온 것. 오픈 날 웨이팅이 700명에 달했고 대로변까지 줄이 이어져 3시간 이상 기다려야 맛볼 수 있었다. 인기에 힘 입어 지금은 매장이 12개나 되었고 부산에도 문을 열었다.


2017년 예능프로 '수요미식회' 수제버거편




그래서 다들 좋아하는 이유가 뭔데?

버거는 하나의 문화니까!


어떠한가? 사람들이 햄버거를 좋아하는 이유에는 단순히 맛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이게 바로 집중해서 쓰고 싶은 지점이었다. 가만보니 매장의 장소성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매장이 주는 익숙함과 접근성은 햄버거를 일상 속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만들고, 누구나 익숙한 맛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선택지가 된다. 수제버거 가게는 장소의 독특함과 차별화된 경험을 통해 햄버거를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승화시킨다. 나 역시 어릴 적 추억 위에 현대적인 미식 경험이 더해지면서 햄버거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터미널이나 역 주변, 대학가 등 빠르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은 ‘훌륭한 접근성'을 갖춘 장소에 자리를 잡는다. 덕분에 그런 니즈를 가진 사람들에게 늘 인기를 얻는다. 서울의 맥도날드나 대구의 맥도날드, 둘 중 어디를 가도 기대하는 맛은 동일하다는 ‘프랜차이즈 맛'도 한 몫 할 것이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매장은 그 브랜드만이 갖는 특유의 톤앤매너와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나 역시  90년대 엄마 손 잡고 갔던 롯데리아, 맥도날드 매장이 어린 시절 경험한 식당 중 가장 이국적이고 트렌디한 장소 중 하나였다.

수제버거의 인기와 더불어 골목 여기저기 생긴 로컬 수제버거집은 어떠한가. 그들은 사장님이 자신있는 재료를 팍팍 넣은 프리미엄 버거와 세상 하나뿐인 인테리어로 꾸며져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탄생한다. 신선한 공간 경험과 맛을 제공한다. 반드시 그 지역 그 가게 그 메뉴를 찾아야만 맛볼 수 있는 제약은 오히려 소비자에게 더 큰 호기심과 매력을 일으킨다. 마치, ‘양키스버거앤피자’에 방문하면 따라오는 문래 특유의 감성, 그리고 문래버거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는 미식 경험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힙한 수제버거 가게는 독창적인 장소성과 커스터마이징된 햄버거 퀄리티와 결합해 낯설지만 반가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을 만든다.

결국 사람들이 햄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빠르고 간편해서가 아니다. 버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소적 경험과 문화를 포함하고 있다. 햄버거 매장의 접근성 뿐만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 브랜드 이미지 등 장소가 주는 시각적인 경험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인이 햄버거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하지만은 않다. 맛, 분위기,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까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그 장소와 맛이 빚어내는 하나의 종합적인 경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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