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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Oct 17. 2015

헌 책과 새 책의 중간 어디쯤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은 어떻게 내 인생의 책이 되었나

온라인 중고서점 나들이가 요즘 내 취미다. 온라인 중고서점의 장바구니에 읽고 싶은 책들을 마구 담아 두고는 막상 실제로 결재를 해서  배송받는 일은 어쩌다 한 번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난다. 중고서점 장바구니에는 내가 맘에 들어 담았더라도 다른 누가 사가면 내 장바구니에서는 사라진다. 중고의 매력이다. 봤을 때 사지 않으면 내일은 없을 수 있다는 것. 똑같이 찍어낸 수 많은 새 책 중의 한 권이 아니라 단 한 권 존재하는 '그' 책이라는 것. 혼자였을 때, 그리고 서울에 살았을 때는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자주 책을 샀고, 책 사는 게 옷 사는 것보다 좋았더랬는데 이젠 이도 저도 쉽지 않다. 교보문고에 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무심히 책 한 권 사들고 버스에 오르던 시절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지만 어쩐지 요즘은 새 책은 잘 사게 되지 않는다.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때 누군가의 손에 들려져 있었을 그런 책이 꼭 있을 것만 같아서. 새 책 보다 저렴한 것도 끌리는 점이지만, 새 책은 공산품 같다면 헌 책은 수제품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모두 기계로 찍어낸 것일 텐데도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도서관 책도 정감 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나만의 책이 아니라 모두의 책이라서, 누군가의 손에 들려 행복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을 책이라서. 생각해보면 이십 대에는 새 책의 빳빳함이 좋았는데, 서른이 넘어 바뀌는 게 참 많다.


그렇게 몇 번 내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책들이 있다. 요즘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을 차례로 소장해서 읽어보는 중인데,  그중에 <청춘의 문장들>과 <여행할 권리>가 다음 차례다. 이 책들을 중고서점에서 검색하면 여러 개의 중고 매물이 뜨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같은 판매자가 2권을 모두 판매하고 있을 때 사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5000원 남짓하는 책을 사는데 2500원의 배송비가 아까우니 한 번에 여러 권을 살 요량으로. 어차피 급하게 읽어야 할 과제도 아니니 게임을 하는 심정으로 그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2권이 한꺼번에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청춘의 문장들>이 있으면 <여행할 권리>가 없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이거나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이 두책이 내 장바구니를 들락날락하기를 벌써 서너 번째다. 오늘도 생각난 김에 한번 들어가 보니 역시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던 책들이 사라지고 없다. 이러다가 아주 못 읽겠다 싶어서 한 권씩이라도 사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잠깐 고개를 돌렸는데, 책장에 <청춘의 문장들>이 무심히 툭 꽂혀있다. 이럴 수가.


책 아래 교보문고 마크가 2011년의 어느 날짜와 함께 찍혀 있는 것을 보니 그 시절 무심히 사들고 나온 책 중에 한 권이었나 싶어 교보문고 구매내역을 검색해보니, 없다. 어떻게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있게 된 것일까. 아마 회원카드에 기록을 남겨두지 않고 급히 샀거나, 혹은 선물을 받았거나 아니면 집 떠난 동생 책이거나 할 테고 책장에 꽂아두고 제대로 읽지 않았으니 기억에서 묻혀 있었던 것 같다. 책장이 빳빳한 것만 보면 새 책인데 책장에 몇 년을 꽂혀 있었으니 이걸 헌 책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에 찬찬히 읽으면, 이 책은 다시 잊지 못할 책이 될 것이다. 수 많은 책들 중에 두 번이나 고르는 책일 테니까. 제대로 한 번 읽기도 전부터 이 책은 내 인생의 책이 되어버렸다. 이제 다음 차례는 <여행할 권리>인데 아마도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는 데까지 또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2011년부터 너는 나를 기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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