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벚나무 열매
보랏빛 벚나무 열매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발길을 멈췄다.
바닥엔 까만콩만 한 작은 열매들이
조용히, 조심스럽게 떨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굽혀 보니
벚나무 열매였다.
그 봄, 골목마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지고 난 자리에
이 조그맣고 검은 열매들이 맺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바라보니
그리 높지 않은 가지 사이로
덜 익은 붉은 열매들,
그리고 막 익어가는 검은 열매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작고 고운 흑진주 같았다.
어린 시절, 벚나무 열매를 따먹던 기억이
스르르 떠올랐다.
손을 뻗어 서너 알 따서
입에 넣었다.
쌉싸름하고, 시큼하고,
어딘가 오미자 같은 맛.
하지만 먹을 건 거의 없었다.
씨만 크고, 과육은 얇았다.
보기보다 실속 없는 열매였다.
그런데 익은 열매에서
손끝으로 번진 보랏빛 즙이
참 곱고 예뻤다.
나는 잠시 멈춰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맛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 보랏빛은 손을 닦아도
곱게, 오래 남았다.
혀끝에 맴도는 익숙한 맛,
그리고 손끝에 남은 보라색 여운.
그 둘이 함께
오랜 추억처럼 마음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