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동기의 퇴사 소식

일상 속 타협점 찾기

by 크리스틴

잠이 쏟아지는 오후 3시, 입사동기 K의 메시지가 나를 깨웠다.

‘저 면접 본 회사에서 최종 합격 연락이 왔네요. 연봉만 맞으면 이직하게 될 것 같아요.’




지난주 면접을 보러 간다며 내게 슬쩍 귀띔하고 오후 반차를 썼던 게 기억난다. 부러움보다 이젠 속 터놓고 실시간으로 험담을 나눌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쉽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선포를 했는데 역시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입사동기 K의 소식에 동료 몇 명과 얘기를 이어나가려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이미 커피를 두 잔째 주문하는 A가 말한다.

“서비스 오픈은 지난달에 했는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지? 모두 야근하고 고생 참 많이 했지만 따로 휴가를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회식도 없고. 모두 지쳐있어요.”


잠자코 듣던 B가 덧붙인다.

“사람 챙길 줄을 몰라. 돈 받고 일해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B는 플라스틱 컵의 뚜껑을 열고 입안 한가득 커피를 들이킨 뒤 얼음을 씹는다.

“제 모니터야 말로 바꿔야 하는데 그냥 쓰고 있어요. 특정 작업을 할 때 화소가 깨지는데 이거 보고도 바꿔주겠단 말도 없어요.”

디자이너로 입사한 지 3년 차가 된 C는 체념한 지 오래다.

느린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복귀한다. 임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찾는다. 양측은 서로를 지켜보지만 뭐라 지적하지 않는다. 탐탁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서 암묵적으로 허용한다. 옆 자리에서 한숨 섞인 말소리가 들린다.

“에러가 어떻게 나는지 재현 좀 해주세요. 지난번에 바꾼 건데 다시 돌려놔야 하나.. 후우.”

또 다른 직원 무리가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그들을 따라 B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키보드 소리가 잦아들고 사무실이 조용해진다. 임원들의 방문도 굳게 닫혀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만 15세 이상 남성의 흡연율은 31.6%로, OECD 주요국 가운데 터키(40.1%) 다음으로 높다. 이 수치를 뒷받침하듯 개발팀 직원 대부분은 흡연자이다. 금연 중이었지만 스트레스로 담배에 다시 손을 댔다는 직원도 있다.


보통 하루에 5~6회가량 자리를 비운다. 한 번 나가면 평균 20분 정도 걸린다. 물론 앉아있는 시간과 업무 효율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자리에서도 딴짓을 할 방법은 많다. 메신저 대화, 웹 서핑, 인터넷 쇼핑 등 온라인 세상에선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 모바일 게임을 켜 두는 직원도 눈에 띈다.


은밀히 면접을 보는 이들이 넘치고 알음알음 정보를 공유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회사 평판을 꼼꼼히 확인한다. 그렇게 입사했지만 니코틴에서 수시로 위안을 얻어야 할 만큼 스트레스가 크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줄기차게 담배를 태우고 틈틈이 면접을 보게 만드는 걸까?

A는 합당한 보상이 없음을, B는 인간적인 교류가 없음을, C는 기본적인 장비조차 제공하지 않는 태도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이 회사에 남아있을까?


채용시장이 얼어붙어서 시기를 엿보는 사람,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최소 한 달은 더 다녀야 하는 사람, 부족한 경력이라 연차를 채워야 하는 사람 등 각자의 상황과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 근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이다.


회식이 없지만 야근을 하지 않는다. 연봉이 높진 않지만 월급이 끊긴 적은 없다. 휴가는 자유롭게 쓴다. 자율 출퇴근제로 출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상황을 파악한 직원들은 이 장점을 최대한 이용한다.


몇 번의 수정 요청이 내려와도 담배 한 모금으로 불만을 털어낸다. 과한 요구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후 기술적인 방법을 검토한다. 서비스의 목적이나 완성도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임원의 지시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회사와 직원 양측은 각각 일을 시키고, 노동력의 대가를 받는 이해관계 선상에 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한 달이 멀다 하고 퇴사자가 속출한다. 채용공고는 항상 올라가 있지만 면접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작동이 거의 멈춘 기계와도 같다.

퇴근이 임박한 시간, 분기별 ‘OKR’을 적어서 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이란 목표 및 핵심 결과지표를 뜻하는 용어로써, 조직적 차원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 결과를 추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목표 설정 프레임워크를 말한다.


한마디로, 각자 목표를 설정하면 결과 달성 정도를 보고 개개인을 평가하겠다는 얘기다. 제대로 활용된 적이 없다는 말들을 속삭이며 나름의 목표를 적어서 낸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머지않아 마음속 목소리와 조우하게 된다.

'출근한 지 한 달하고 보름밖에 안됐는데 적어도 6개월은 채워봐야지!'

'6개월이나 1개월이나 1년을 못 넘긴 건 마찬가진데 뭐.'

'정말 이 길이 맞는 거야?'

'회사 다니는 게 인생의 목적이었어?'

'지금은 답이 없잖아.. 돈 벌면서 뭘 할지 찾아보는 게 맞는 거라고.'

'출퇴근만으로 지치는데 다른 걸 찾을 힘이 생길 것 같아?!...'


내일 부로 퇴사자가 될 K는 칼퇴근을 준비한다. OKR을 적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도 캘린더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 날의 일과는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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