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불통 사이

실무자와 관리자에게 필요한 한 가지, 설득

by 크리스틴

“애니메이션이 들어가면 금액이 싸 보이고 안 들어가면 더 비싸 보이나요?”

모든 것이 멈춘 듯 짧은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소집된 회의에서 그만 마음의 소리를 입으로 내뱉고 말았다.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던 어느 날, 앱 리뉴얼과 밀려드는 요구사항을 처리하며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성질을 드러내버린 경위는 이렇다. 앱 화면에 움직이는 기능을 넣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중간관리자가 이렇게 답했다 - ‘사장님께선 애니메이션이 들어가면 조금 더 싸게 보인 다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요?’


나의 도발은 저 한마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꾸 입맛대로 바꾸고 싶어하는, 이미 개발까지 완료된 부분도 쉽게 바꾸라고 말하는 윗사람. 그들과 작업자 사이에서 필터링 기능을 거의 상실한 중간관리자. 요구사항은 끝이 없으면서 리뉴얼 일정은 따박따박 체크하는 상황까지. 어찌 보면 너무나 흔한 갈등 탓이다.

잠자코 있던 개발자 한 분이 기술적인 처리와 화면 로딩 속도 등을 꺼내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어필했다. 그럼에도 이 기능을 넣어야 하는 건지 완곡하게 질문한다. 해야 한다면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의견도 덧붙인다. 일거리를 넘기려던 중간관리자는 확신을 하지 못한 채 이 건은 일단 보류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동료와 커피를 한 잔 하며 열을 식힌다. 줄곧 뜨거운 커피만 마셔왔는데 여기 와서 아이스커피로 취향마저 바뀔 지경이다.

“전 아직까지 내려놓지 못했나 봐요.”

동료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얼음이 열을 내려주니 행방불명되었던 이성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입사 한 달 차가 되면서 이 곳의 생리를 완벽히 파악했다. 그제야 모든 일들이 이해되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임원들은 칸막이로 막은 방을 각자 한 칸씩 쓰고 있다. 그동안 이들을 주축으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브레인스토밍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지면 그것들은 중간관리자를 통해 실무자에게 업무로 떨어진다.

모든 건 정리되지 않고 진행되었다. 진행되는 도중에도 수차례 번복되곤 한다. 기획자를 들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기획자가 할 수 있는 건 그야말로 ‘정리’ 뿐이다. 요청에 맞추어 답안을 제시할 뿐, 그 답안은 컨펌이 되었다가도 수일 내로 바뀌기 일쑤다. 기획자는 더 이상 ‘기획’을 하지 못한다. 회사에서 나의 역할에 대해 개인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다른 회사도 다 똑같아 별거 없어. 월급 잘 나오고 야근도 안 하면 최고지 뭐. 어차피 돈 벌려고 들어갔잖아. 일에 욕심 내지 말고 그냥 다녀봐.”

친구는 진작에 본인의 위치를 깨달은 현자가 되어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다. 한참 열정적으로 일했을 때도 윗선이 정해둔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태생적으로 관리자의 시선은 실무자의 것과 다르다. 양쪽의 의견이 맞붙을 때 저울은 보통 의사결정을 하는 위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그들의 의견은 외부 요인 등을 통해 회사의 방향과 존속까지 염두하고 제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게 그 결과를 뒤집을 근거는 없다. 나는 현실을 바라보고 윗사람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으므로.


IBM의 창업자인 토마스 왓슨은 뜻깊은 말을 남겼다 - "어떤 기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실제 차이는 그 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의 재능과 열정을 얼마나 잘 끌어내느냐 하는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다."

설득은 실무자와 관리자 양쪽 모두에 필요한 능력이다. 실무자는 나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관리자는 실무자를 배려하며 그들의 열정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해줄 수 있어야 한다. 설득이 없는 결정은 이해 부족과 함께 상호불신과 소통의 단절을 초래한다.


여전히 많은 관리자들이 회의라는 형식을 빌려 결과를 통보한다. 그 이면엔 나름의 고충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양쪽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절충안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절충안이 쉽게 바뀌지 않도록 주의하고, 부득이한 경우엔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한다.


생각 끝에 이성을 되찾고 나니 어느새 중간관리자에게 측은지심이 우러난다. 실무자들의 열정은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나는 설득하지도 설득당하지도 못한 채 섣부르게 마음의 소리를 내질렀음을 알았다. 열정과 냉정사이, 나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직원 C가 되어가고 있었다.


조직의 소통 문화, 핵심은 설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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