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 간 팀원에게 전화 걸기

PM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by 크리스틴

첫 번째 통화 시도 :

"여보세요~ 병무청이죠? 예비군 훈련 가있는 사람에게 연락하려고 하는데요.."

두 번째 통화 시도 :

"안녕하세요~ 거기 0000부대죠?..."

세 번째 통화 시도 :

"네, 00사단이죠?..."

네 번째 통화 시도 :

"저기, 이 번호로 연락하라고 하셔서.. 훈련병 권00을 찾고 있어요."




때는 바야흐로 2017년 가을, 나는 여의도에 위치한 암호화폐 스타트업에서 기획자 겸 PM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비트코인으로 전 세계가 들썩이던 때 우리 회사는 ICO 프로젝트를 통해 자금을 모집 중이었다.

※ICO(Initial Coin Offering)란 새로운 암호화폐/플랫폼/상품 등의 개발을 위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집하는 행위를 의미함


블록체인, 암호화폐, 토큰 등에 제반 지식이 없는 상태로 맨땅에 헤딩하며 작업한 나의 첫 프로젝트가 바로 ICO였다. 어설프고 미흡한 부분이 많았던 탓에 프로젝트는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참여자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직원들은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참여자에게 코인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확인차 담당 개발자를 찾았는데 그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K님 퇴근했나? 내일 휴가인가요?"

"아, K님 오늘부터 예비군 훈련 간다고 하던데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경영지원팀 한 분이 그의 행방을 확인해주었다.


"아하.. 그럼 이건 H님에게 맡겨야겠네요."

곧장 개발팀에서 K님과 함께 일하는 H님에게 진행을 부탁하러 그의 자리를 찾았다.

"어.. 이건 제가 작업이 불가능해요. K님 컴퓨터로 진행해야 하는 건데.. 프로그램 내부 패스워드도 K님만 알고 계시거든요."


이럴 수가.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미 사이트 내 공지와 참여자에게 이메일 안내까지 끝낸 상황인데 코인을 지급할 담당자가 회사에 없다?! 이건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PM은 나였고 작업 담당자에게 환기를 시켜주며 미리 일정을 체크했어야 옳다. 왜 난 K가 당연히 출근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일까?

코인을 지급해야 하는 사람은 해외 거주자였고 연락이 닿을 방도가 없었다. 어쨌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나는 경영지원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예비군 훈련 가신 곳이 어딘가요? K님과 통화해서 H님에게 패스워드만 알려주면 될 것 같아요!"

"....?"

순간, 앉아있던 모든 직원의 시선이 내 뒤통수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경영지원팀 P님은 털털하고 씩씩한 성격답게 1초 만에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병무청이죠? 예비군 훈련 가있는 사람에게 연락하려고 하는데요.."

푸헙!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에 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아 네, 0000부대로 연락해볼게요. 전화번호가.. 네~"


P님은 이어서 부대 번호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거기 0000부대죠?... 아 00사단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푸하하하하하! 누군가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곁에 서있던 나도 벌게진 얼굴로 웃음을 참으며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네, 00사단이죠?..."

이쯤 되니 웃음을 멈추지 못해 배를 움켜쥐는 환자가 속출하고, 통화하는 P님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한껏 묻어있었다.

"저기, 00사단에서 이 번호로 연락하라고 하셔서.. 훈련병 권00을 찾고 있어요."

3분가량이 흘러 문제의 당사자 K님, 권00가 수화기 너머에 모습을 드러냈다. P님은 바로 나를 바꿔주었고 모든 직원이 사태를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데시벨로 용건을 마구 쏟아냈다!!


.... 결국 사건은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ICO 참여자에게도 무사히 코인이 돌아갔고, H님은 패스워드를 전달받아 작업을 대신 처리했으며, K님은 통화 후 생활관으로 잘 돌아갔다고 한다. 예비군 훈련소에 전화를 걸어주신 P님께 또다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나중에 들어보니 K님은 샤워 중이었단다. 누군가가 전화를 받으라고 소리쳐서 너무 놀라 거품도 제대로 못 헹군 채 뛰쳐나왔다고. ㅋㅋㅋ


PM으로서 불필요한 조치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작업 담당자들의 사정 파악은 기본이다!


keyword
이전 11화날카로운 개발자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