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 뭘로 태어날 거야?
섭이 운전하는 차는 남산 찻길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간다. 둘 다 회사에는 외부 미팅이 있다고 말하고 농땡이 치러 나온 상태였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테이크아웃 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아들인다. 창문 너머 쏟아지는 늦가을 오후의 해가 손등 살갗에 닿는다. 용산 후암동에 사는 섭과 용산 신계동에 사는 나는 종종 일을 미뤄두고 남산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드라이브를 하며 수다를 떤다.
섭이나 나나, 몽상이 일상의 전제라 수다 내용은 대개 현실과 접점이 개미 눈곱만큼도 없다.
“너는 다음 생에 뭘로 태어날 거야?”
섭의 질문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안 태어날 건데.”
섭은 충격받은 듯 이야기한다.
“진짜? 안 태어나겠다는 사람은 우울증이라던데?”
줄곧 생각해 왔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이렇게 고된 인생을 다시 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게 우울증이라고? 회사 일로 마음이 힘들고 우울한 것은 사실이며, 평균의 사람보다 우울한 감성을 지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우울증이 결코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다만,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현하기에 ‘우울증’은 적절한 단어가 아니라고 느낀다.
“그럼 오빠랑 언니는 뭘로 태어날 건데?”
듣자 하니 섭과 섭의 애인 재이도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대화가 일상인 듯했다. 얼마 전, 둘은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나눴다고 했다. (재이는 나와 MBTI가 같다.) 재이는 다음 생에 고래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단다. 인간 사회에서 벗어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다고. 역시 내가 좋아하는 재이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SNS에서 어부들이 버리고 간 나일론 로프에 몸이 감겨 괴로워하는 고래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섭은 얼마 전, 자신이 처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생각을 했으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놀랍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언제나 활기차고 발랄한 섭은 최근 갑작스레 경험한 불안장애로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약해진 마음과 연관된 게 아닐까, 짐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다시 안 태어나고 싶은 게 그렇게 슬플 일인가? 이번 생을 정말 잘 살아내 보겠다는 다짐의 다른 말일 수도 있지 않아?”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한 모든 사람들을 변호하듯, 적극적인 변론을 펼쳤다.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나겠다는 그 마음, 이번 생에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잖아. 그러면 이번 생에 이루던가, 못할 거면 흘려보내던가. 그런 미련을 마음에 품고 이루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게 더 슬프다.”
소리 내지 않으려고 숨을 고르며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던 회사 화장실 칸 속 나를 떠올린다. 칸을 나와, 빨개진 코를 덮으려고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르곤 했다. 그러면서 거울 속 나를 보고 다짐했다. 다시는 욕심 내지 않으리. 받아들이리. 거울 속 눈물로 코가 빨개진 내 모습은 어린 시절 장래희망을 적던 시절 머릿 속으로 그린 내 모습과 거리가 멀었지만 인정하려고 노력했다. 무던해지려고 노력했다. 그 덕일까. 시간이 흘러 눈물을 닦아내는 휴지 칸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너무 힘들지 않아? 난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출근하는 것도 힘들어. 요즘에는 술 먹고 노는 것도 힘들어. 그렇다고 체력을 기르자니 또 운동하고 식단 관리해야 하는데 그것도 너무 힘들어. 재밌는 것도 맞지. 근데 재밌는 것도 맞는데 힘든 것도 사실이라니까? 이렇게 힘든 삶을 다시 살겠다고?”
운전하고 있는 섭을 한 번 쳐다보니 아무래도 우울증이 맞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의도한 건 이게 아닌데.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한다.
“내 생각엔,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는 결정은 이번 생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고, 이번 생에서 행복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지금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쓰겠다는 마음인거잖아. 그러니까 다음 생에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오늘 하자고. 롸잇나우.”
사실은, 나는 자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있기를 소망하는 나를 본다. 저번주 하와이에 있는 5성급 리조트로 회사 워크숍을 간 그 선배, 주말에 백화점에서 디올 가방을 산 그 친구, 원래도 연봉이 높았는데 연봉이 더 높은 직장으로 이직한 그 후배. 정말 그것들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는 화면 속 나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서 침울했다.
깜빡 졸다 깨어난 사람처럼 현실로 돌아온다. 눈앞에 늦가을 남산 풍경이 펼쳐져 있다. 노랗고 빨간 장대비가 지나간 것처럼, 찻길 양옆에는 진한 단풍이 가득하다. 나뭇잎 사이를 관통하는 햇살, 푸른 하늘과 함께 빛나는 나뭇잎, 그리고 가끔 살랑살랑 부는 바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농땡이 치고 남산 드라이브를 하는 가을 오후, 태평양 바닷속은 아니지만, 조수석에 앉은 나는 꽤나 자유롭다. 침울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다음 생은 너무 먼 이야기다. 내가 오롯이 알 수 있는 건 당장 지금이다. 문득 이 시간, 이 장소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Photo by guille pozz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