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 적응기_명상과 수행_'나만의 명상법' 만들기
나만의 명상법에 ‘느티나무’라고 이름 붙인 것은 2022년 10월 11일의 일이다. 전공 수업을 듣던 중 교수님께서 우리 학교 교목인 느티나무가 어떤 뜻을 지니는지 말씀해주셨다. ‘늦게 틔우는 나무’, 봄이 되면 다른 나무들은 다 싹을 틔우는데 느티나무는 뒤늦게 싹을 틔운다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나도 언젠가 느티나무처럼 늦게나마 나의 삶을 펼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첫 학기는 내내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다른 1학년들은 하나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나만 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 시기를 지나 2학기의 종강을 앞둔 지금은 1학기와 달리 한 학기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여 나의 흥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보냈음에 만족하고 있다. 이번 학기는 내가 뒤늦게 싹을 틔우기 시작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그 배경에 운명처럼 나에게 다가온 명상과 수행 수업, 그리고 ‘느티나무 명상법’이 있다.
다시 2022년 10월 11일로 돌아가서, 느티나무의 뜻을 알게 된 전공 수업이 끝나고 여느 때와 같이 혼자 밥을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아직 친하다고 할 수 있는 과 동기가 없어 전공 수업을 같이 듣는 동기들의 관심사 밖에 있는 사람이다. 나를 안중에 두지 않는 이들에게 나의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단정짓고 마음을 비운 지 오래지만, 여럿이서 한 친구를 기다려 함께 밥을 먹으러 갈 때 같은 공간에서 그 모습을 혼자 지켜보면 여전히 마음 한편이 쓰려온다. 그날도 약간의 씁쓸함과 외로움을 느끼며 혼자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던 중 다른 과 친구에게서 시험이 끝나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연락이 왔다. 다들 무리 지어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나만 혼자 밥을 먹는 상황에서 나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 말 덕분인지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내 시야에 운동장과 그를 둘러싼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들어왔다. 그 전경에 아무 생각하지 말고 파랗고 깨끗한 가을 하늘 아래 알록달록한 풍경을 온전히 즐겨보고 싶었다. 풍경에 이끌려 나무 아래를 걷기 시작했다. 경로를 조금 틀어 아무도 없는 길을 걸었고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 학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 아래 몰려 있는 인파에도 불구하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장엄한 나무만 보였다. 근처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나무를 바라보다가 ‘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고는 엄청난 상쾌함을 느꼈다.
나의 고민과 스트레스는 주로 내 사고가 타인을 향해 있을 때 생겨났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열심히 살까, 저 친구들은 어떻게 친해진 걸까, 나는 왜 끼워주지 않을까 등의 생각이 나를 못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그날 산책 중에 찾았다.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기. 오로지 나무와 나에게만 집중하기. 벤치에 앉아 상쾌함을 느낀 후 무작정 나무만 보며 학교 안을 걷기 시작했다. 나무 기둥, 나뭇가지, 나뭇잎, 그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에 불필요한 생각이 없어지고 편안해진 나를 발견했다. 어딜 가든 사람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나로서 나무만 보며 걷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전까지 학교를 걸어 다니면서는 ‘저 사람들은 즐거워 보인다.’, ‘혹시나 애매하게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어떡하지.’, ‘나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까?’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그날은 달랐다. ‘저 나무는 왜 기둥이 중간에 잘렸을까?’, ‘학교에 참 다양한 나무가 있구나.’, ‘이 나무 이름은 이거였구나.’, ‘상록수가 지조와 절개로 높게 가치 평가되는데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잃지 않는 게 꼭 좋은 걸까? 변화에도 엄청난 힘이 있는 게 아닐까?’, 걸으면서 든 생각이라곤 이러한 질문들 뿐이었다. 진정 나무와 교감했다고 할 수 있다. 우연한 계기로 고안해 낸 ‘나무 보며 걷기’가 느티나무 명상법의 시작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나만의 명상법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걷기 명상을 더 알아가게 되었다. 우선, 걷기도 명상법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겨 추천 도서 목록에 있는 《HOW TO WALK 걷기 명상》이라는 책을 빌려 읽었다. 사실 ‘나무만 보며 걷기’가 제대로 된 명상이 맞는지 회의가 들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만의 방법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걷는 동안에 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회상 없이,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없이 그저 자연과 그 속을 걸어가고 있는 나를 온전히 바라보았다. 책에서는 그러한 걷기 명상을 ‘마음다함의 걸음’이라고 표현했다. 책은 나에게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 역시 제공했다. 책에서 알려준 대로 숨을 들이마실 때 두 걸음, 내쉴 때 세 걸음 내딛으면서 의식의 흐름을 호흡에 집중시키고, 걷는 동안에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을 체감하며 감사함을 되새기는 방법을 ‘나무 보며 걷기’ 명상에 도입했다. 바삐 걷는 와중에도 이 방법들을 의식하면 숨을 고르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식으로 명상하다 보면 일상 자체가 명상이 되어 내 삶이 언제나 평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품어보았다.
그러나 이 방법을 일상 속에서 매번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어느새 걸음 방법을 잊어버리고 ‘지금, 여기, 나’에 집중하기보다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며 걷는 나를 발견했다. 아차 싶어 호흡에 집중하다가도 조금 지나면 또 다른 생각을 하곤 했다. 마음을 이완시키기 위해 명상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잘 걷고 있는지 계속해서 검열함으로써 마음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역효과와 더불어 이번 학기에 참여하고 있던 인턴 활동이 점차 나를 지치게 만든 시기가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취했던 방법은 ‘쉬어가기’였다.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인턴 활동은 센터에서 장애 아동의 학습을 보조하는 일이었는데 일하는 동안 배우는 점도 많고 아이들의 웃음에 기쁨을 얻어가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내는 소음, 의사소통의 어려움, 긴장 상태 유지로 인해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상당히 지치게 되었다. 내가 점점 지쳐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이후로는 출근 시간보다 20분 정도 더 일찍 도착해서 근처 놀이터에서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벤치에 앉아 눈을 감기도, 눈을 떠서 주변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쉬어가기’의 힘을 얻었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차가워진 바람, 주택가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집밥 냄새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각이 비워지고 긍정적인 기운이 샘솟는 경험을 했다. 아마도 그 공간이 주는 다양한 자극으로 인해 오로지 나의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내가 너무 지쳐버리기 전에 충전의 시간을 가지려는 조치가 명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경험이 느티나무 명상법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잠시간의 휴식으로만 여겼던 ‘쉬어가기’를 명상으로 발전시킨 계기는 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또 다른 놀이터를 발견한 데에 있다. 그곳에서는 지친 마음이 햇살에 녹아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는 왠지 모를 공허함과 허무함으로 기분 전환이 필요하여 외출했을 때였다. 버스에서 내려 햇살을 맞으며 동네를 걷던 중 내 눈에 손을 잡고 걸어가시는 노부부가 들어왔고, 놀이터에서 아무 걱정 없이 해맑게 소리치며 노는 아이들과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들어왔다. 존재만으로 내 마음의 온도를 높이고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 그리고 그 공간에 정이 많이 갔다. 앞선 충전 경험과 종합해봤을 때 놀이터는 억지로 생각을 비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비워지는 공간이자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었다. 이를 알아차린 이후, ‘놀이터에서 쉬어가기’ 명상을 종종 시도했다. 지칠 때마다 놀이터에 앉아 놀이터가 담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정겨운 소리, 놀이터가 간직하고 있는 훈훈한 향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라도 그날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기만 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무 보며 걷기’와 ‘놀이터에서 쉬어가기’를 병행하는 나만의 명상법, ‘느티나무 명상법’의 핵심은 ‘나무’와 ‘사람’에 있다. 나무는 초반에는 쓸데없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 존재이나 점차 걷는 방법과 걷는 동안의 마음가짐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내 감각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나의 명상 동반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명상법의 개발은 사람에게서 벗어났을 때 느낀 해방감으로 시작하여 사람에게서 느낀 온정으로 끝이 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민하기보다 내가 언제, 어떻게 미소 짓고 있는지를 관찰할 때 더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결국, 앞서 명상법의 핵심이라고 말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나’이다. 지침, 무기력함, 허무함 따위의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해결하는 주체는 반드시 내가 되어야 했다. 나의 경우, 그런 상태에 접어들 때마다 밖으로 나와 나무, 햇살, 바람, 땅의 굴곡 등 자연을 내 몸 가득 받아들였으며, 따뜻한 놀이터의 풍경에 행복해진 나를 들여다봄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다.
끝으로 왜 명상법의 이름을 ‘느티나무’로 지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이름은 느티나무의 뜻을 알게 된 날 우연히 나무를 보고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경험에서 비롯되었기도 하지만 나와 ‘나만의 명상법’을 상징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한 지 반년이 지나 비로소 내가 꾸려나가는 대학 생활에 행복을 느끼고 있고, 나만의 명상법은 학기의 절반이 지나서야 갈피가 잡혀갔다. 언제 싹을 틔울지 막막했어도 결국엔 늦게나마 싹을 틔워냈다. 느티나무처럼 말이다. 나의 삶에서 이번 학기와 같이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앞으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가 말해주듯 나 역시도 변할 것임을 안다. 다시 남과 나를 비교하며 조바심이 생길 수도, 눈앞에 닥친 현실에 불안이 엄습해 올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느티나무 명상법이 나에게 늦어도 괜찮다고,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을 걸어오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