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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현제 Mar 27. 2024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읽어봤습니다

파트로클로스를 화자로 내세운 아킬레우스의 이야기. 놀랍고 슬프다. 결말을 아는 상태로 읽었으니 읽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대힌 복선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가 너무나도 선량하고 아름다운 인간이어서. 그런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

아킬레우스가 왜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했는지, 왜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사랑했는지 절절하게 이해가 갔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기에 와닿는 묘사들도 많았다. 이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많다. 케이론이 파트로클로스에게 이제 다시는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한 대목과, 케이론이 그가 기른 아이들이 결코 그에게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하는 대목, 그렇게 파트로클로스를 미워하던 테티스가 결국은 그를 위해 묘비에 이름을 써주는 장면...

브리세이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브리세이스를 구하기 위해 파트로클로스가 용기를 낸 것 역시 그다운 선택이었다. 그는 다시 돌아간대도 몇 번이고 그렇게 할 것이다. 브리세이스가 아킬레우스에게, 그를 사랑한 것이 당신 혼자인 줄 아느냐고 소리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도 따스한 파트로클로스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을 덮고 나니 나 역시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결국에는 저승에서 다시 만났기에 두 사람은 행복했을 것이다. 서로를 사랑했으니. 살아서는 서로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만났으니. 죽음만이 전부가 아니었으니. 오히려 죽음으로써 둘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해피엔딩인 것이다. 눈물을 그토록 흘리고 마음 아파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결말로 이어졌으니 기뻐해야 할 것이다. 어떤 안도감도 드는 것 같다. 아킬레우스가 꿈에서 헥토르를 죽이고 안도감을 느낀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건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한 데서 오는 것보다는, 결국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그 자신도 예언에 따라 죽게 될 것이고 죽음을 맞이하면 드디어 파트로클로스의 곁으로 갈 수 있으니 거기서 오는 안도감이 아니었나 싶다. 마침내 함께할 수 있게 되니 그것이 그를 안심시켰을 것이다.

기쁜 결말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기에 마냥 기쁘지는 않다.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그럼에도 나 역시 안도한다. 결국에는 두 사람이 다시 하나가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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