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맞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ADI 테스트를 마치고 내내 찝찝한 기분이 들었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자폐라고 해도 범수는 그냥 범수니까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리고 화요일이 됐다. 진단 결과를 들으러 가야 한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나의 토템인 남편도 데리고 나섰다. 접수를 하고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범수 ADOS 테스트와 언어 테스트를 한 검사자 선생님이 나와 범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너무 긴장된다고 하면서 선생님의 반응을 살짝 떠보았는데, 정확히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치료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고 뭐 그런 얘기를 한 것 같다. 내가 진짜로 긴장을 하긴 했었나 보다.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잠깐 설명을 하자면 범수의 진단을 위해 총 네 가지 검사를 했다. 처음에는 지능검사, ADOS 테스트, 언어 검사, ADI 테스트를 연달아 한 달에 걸쳐 했다. ADOS는 검사가 준비된 활동을 범수랑 해보면서 범수의 반응을 보며 점수를 매기고 ADI 테스트는 부모인 나와 면담을 하면서 또 점수를 매겼다. 그 면담 테스트가 지난주 금요일이었는데, 질문을 받을수록 범수가 자폐인 것 같았다. 제스처를 잘하는지 얼굴 표정이 다양한지, 예상치도 못한 질문도 받았다. 낯선 사람이나 친한 사람이 오면 나와서 반기는지 아니면 그 사람이 와서 범수 얼굴을 보고 웃으면 범수도 따라 웃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범진이와 비교해 보니 확실히 좀 그런 경우가 적은 것 같기도 해서 잘 모르겠지만 둘째랑 비교하면 좀 그런 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진단은 정확해야 하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면담 테스트 후 찝찝하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진단 결과를 수치화한 문서를 보여줬다. ADOS 테스트는 7-8점 미만이어야 하는데 15점이 나왔고 ADI 테스트는 부문별로 다르지만 기억이 나는 커뮤니케이션 항목에서 10점 미만이어야 하는데 20점이 나왔다. 그래서 결론은...
"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맞습니다."
"아, 솔직히 말하면 믿기지가 않아요. 저희는 대화가 좀 안 되는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거든요."
"그건 큰 행운인 거예요. 지능이 88이 나왔는데 이건 평균 범주입니다. 범수는 다 배울 수 있어요. 꾸준한 치료와 지원을 받으면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도 무리 없이 할 거고 아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수준이 될 거예요. 지능이 40, 50인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진료실 들어오자마자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범수는 그런 경우와는 많이 다릅니다. 천만다행이죠."
나는 잠시 멍해졌지만 자폐 진단을 받으면 물어보려고 했던 것들을 물어봤다.
"얘가 학교 생활은 잘 할 수 있는 거예요? 일반학교는 갈 수 있어요?"
"아무도 미래는 장담 못하지만 지금 시작한 치료들을 진행하면 별 문제가 없을 거고 학교 가서는 아우티스무스 앰뷸란츠(자폐 치료 센터?)에서 또 수업을 받을 수 있고, 전문 인력인 보조 교사가 또 도와줄 수 있어요."
"저희가 시골로 이사를 갈 계획이 있는데 그런 지원을 받는데 무리 없을까요?"
"어디로 가실지 모르지만 바이에른주 내에서는 비교적 연결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여러 기관들의 팜플렛을 나눠줬다. 이와중에 이사 걱정을 하는 내가 너무 이성적으로 느껴졌지만, 한편으로 또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이렇게 물었다.
"진단이 바뀔 수도 있나요?"
"진단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일종의 기질이기 때문에."
의사는 꽤나 단호했다. 난 받아들였다가 거부했다가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의 말과 행동을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이런 일종의 자극적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쓰는 게 맞는지 어떨지 약간 고민했지만 내가 아이를 걱정하며 수많은 사례를 찾아봤듯 누군가에게는 내 일기가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그리고 이건 다만 기록일 뿐이니까. 또 이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까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