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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Apr 09. 2023

일기예보

우산 잃어버리고 쓴 시

일기예보


준비 없는 인생은 여름철의 긴 장마

하늘이 맑아졌을까

밖으로 뛰어나가니

몰려오는 먹구름

온종일 흙, 나무, 꽃

숨 쉬는 모든 것을 적셨지


길 잃은 망망대해 위

별빛도 없고 나침반도 없는 기나긴 밤

위치와 방향을 상실한 채

장님처럼 되짚어 보는 모든 것

그때의 눈빛과 생각과 사랑


양치기개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나

비구름 떼를 몰고 다녔으니

수직으로 내려 꽂힌 소나기

비수가 되어 돌아왔지

두들겨 맞은 몸과 마음은

온통 상처투성이


우산을 챙긴다

위험은 찾아오지 않는다

우산을 챙기지 않는다

위험은 찾아온다

인생은 아리송한 날씨와 명제를 수반하는 것


우산을 잃어버린 당신,

자책하지 말기를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영화관에서

당신이 놓쳐버린 것들 덕분에

누군가는 긴 장마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매일 아침 일기예보에서는

우산을 챙기라고만 말했지

인생은 아리송하다고

알려주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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