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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May 28. 2023

검은 물줄기의 정체

산산(山山)이 02화





첫 여행이어서 그런지 밤새 잠을 설쳤어요. 비몽사몽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담임 선생님의 통솔 하에 움직였어요. 탑승 수속을 하는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창가 자리로 배정이 되었어요.


통로 쪽과 가운데 자리를 배정받은 아이들은 이게 뭐라고, 저한테 자리를 바꿔달라고 사정하더라고요. 이게 뭐라고. 그 순간 나는 얘네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삼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창가 쪽에 배정되었구나.


기세 등등해졌죠. 두 명 중에 누구를 선택해서 자리를 바꿔 줄지는 제 몫이었지만, 저는 창가 자리에 앉는 것을 택했어요. 그 누구에게도 자리를 바꿔주지 않는 것이 공평한 거라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들은 제가 창가 자리에 앉는 걸 못마땅해 했대요. 저들보다 가난하고 못 살고 모자란 아이가 더 좋은 자리에 배정된 게 괘씸해서 그냥 제가 그 자리에 앉는 게 싫어서 둘 중 아무나하고 바꿔주길 바랐던 거예요.


난들 아나요. 아무튼 저는 아이들 속은 꿈에도 모른 채, 설레는 마음으로 창가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활주로가 점점 작아지고, 그 위에 있던 거대한 비행기들이 장난감처럼 보였어요.


제가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면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사실 비행기를 처음 타봤거든요. 모든 게 신기했어요. 비행기가 어느 정도 높이에 도달하자, 공항이 새끼손톱만 해졌어요. 주변 건물들도 마찬가지였죠.


근데 이상하더라고요. 김포는 바다 근처에 있잖아요. 그 바다가 흘러나온 물줄기가 너무 시커먼 거예요. 바다가 이렇게 시커먼가. 서해보다 동해가 더 검푸르다는데. 이상했어요.


건물들, 도시들 사이사이를 갈라놓은 이 검은 물줄기를 쳐다봤어요. 멀어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데 제 머릿속의 주름 하나하나가 서서히 마비되는 느낌이었죠.


심장이 턱하고 막히는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비행기 하나 못 타본 촌사람이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 이렇게 죽는구나. 이게 바로 심장마비구나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눈을 질끈 감았더니, 검은 물줄기가 눈앞에 그려졌어요.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제 눈 안에 가득 찼죠. 새카맣고 검은색이. 눈알을 굴려가며 잔상을 훑었어요.


물줄기가 아니었어요. 예상이 가시나요. 그건 큰 산에서부터 여러 곳에 길게 뻗어나간 산줄기, 산과 봉우리가 만나고 봉우리와 산이 만나 여러 산들이 서로 충돌하고 융화하며 생긴 산줄기였어요.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평소에도 그랬습니까? 우리나라는 산악지대여서 평소에도 산을 아예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아니요.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어지럽진 않았어요. 산이라고 인지를 하고 의식적으로 피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는 분명히 달랐어요. 산인 줄도 모르고 계속 쳐다봤으니까. 저도 모르게 잠식이 된 거죠. 저는 아무도 모르게 비행기에서 죽어가는 중이었어요. 터질 것 같던 심장이 점점 느리게 뛰고, 가파졌던 호흡은 점점 메말라갔죠.


그때 확신했어요. 산에게 잡아먹힐 수 있겠구나. 할머니가 미친 게 아니었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어요. 그동안 산을 피해 다닌 내 노력이 헛된 게 아니었던 거죠. 온 힘을 다해 눈을 뜨고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산줄기는 온데간데없고 구름만이 저 아래에서 솜사탕처럼 떠다니고 있었어요. 이미 비행기는 성층권에 진입한 상태였어요. 천국의 일부를 경험한 순간이었죠. 새하얀 빛줄기가 뭉게구름 틈새로 뿜어져 나왔어요.


그래서 살았습니까?


네.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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