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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May 28. 2023

산에 홀리게 된다고

산산(山山)이 01화





산을 바라보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일까요. 어린 시절 마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산을 쳐다보지 말라고. 산을 쳐다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홀리게 된다고.


그러면 밥을 먹어도 산을 생각하고, 잠을 자기 전에 누워서도 산을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산에 잡아먹혀버린다고.


할머니가 제 걱정에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알겠는데, 그때는 할머니가 어쩜 그렇게 무서워 보였는지. 머리는 하얗게 쇠어가지고는 뼈만 남은 앙상한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며 고래고래 삿대질을 하시는 거예요.


그게 꼭 늙은 노파가 저주를 퍼붓는 것 같았어요. 겁에 질려서 노란 마루를 맨발로 내려와서는 할머니를 보는데, 할머니 두 눈에 눈물이 고여있던 것 같았어요. 그때 결심했죠. 산을 피하자.


그 뒤로 저는 산을 의도적으로 피했어요. 뒷동산을 가로지르면 학교로 가는 지름 길이 나오는데도 빙빙 돌아서 큰길로 학교를 다녔어요. 뒷동산도 산은 산이니까요. 언제 어디서 홀리게 될까 무서워 두 눈을 꼭 감고 피해 다녔어요.


친구들이 가을에 알밤을 주우러 산에 올라가자고 해도 절대 가지 않았어요.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라서 산에 가질 않으니까, 아니 못하니까 점점 친구들하고 멀어졌어요.


에이 고작 그런 걸로 멀어지냐고요? 우리 때에는 다 그랬어요. 산에 있는 계곡에 발 담그고 가재며 송사리며 잡고 놀아야 하는데 그런 걸 못하니까요. 그런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그래도 동네에 얕은 하천이 있어 다슬기며, 우렁이며 구경은 하고 자랐어요.


의도적으로 산을 피하면서 그렇게 지냈어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거예요. 할머니는 출발하는 전날 밤 저를 부르더니 말씀하셨어요.


한라산은 절대로 오르지 마라. 사면이 바다인 섬에 우뚝 솟아 예로부터 음기가 가득한 곳이다. 거기는 일반인들이 극악무도하게 학살당한 곳이다. 축축한 물기가 많아 한라산에 홀리면 되돌릴 수 없다.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날 것이다.


그때 우리 집은 풍비박산 날 것도 남아있지 않았지만요.


어차피 한라산에 갈 생각도 없었다며, 이미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 따로 버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죠. 그제야 할머니는 안심하는 눈빛으로 잠을 청하러 방에 들어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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