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해서 쓴 시 (사실은 화장실 청소하기 싫어서)
숲 속의 숲
검은 그림자가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당신! 누구신데 우리 집에 있어요? 주택 침입 죄로 신고하겠습니다
벌컥.
그림자는 온데간데없고 그림자가 남긴 다른 그림자 그리고 다른 그림자가 남긴 또 다른 그림자
그림자의 그림자
얽히고설킨 그것들이 하수구 위에 둥둥 떠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생각의 생각
상념, 타념, 집념, 여념
잠들지 못한 사람들이 잠들지 못한다는 증거
저에게는 너무 쓰더군요!
빈속에 마신 블랙커피 다섯 잔
새카맣게 타들어 간 명치
시척지근한 신물
헛구역질은 억지로 참아냈습니다
하수구가 꽉 막혀 구토를 했다간 큰일
미해결 사건의 증거품 훼손 죄
경찰서에 잡혀가긴 싫었거든요
사람들은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감습니다
머리카락의 끝자락에 붙어있는
수많은 모근들
잡초의 뿌리에 아슬아슬
붙어있는 흙덩어리
검은 숲은 원래 검지 않았어요
다 게으른 사람들이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생긴 일
이곳저곳으로 뻗어나간 나뭇가지
숲 속의 숲
공간을 빼앗긴 햇빛
그곳에는 바위도 나무도 다람쥐도 새도 사람도
모두 검은색
그러니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겠어요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검은색
암전막을 걷어내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잠 못 드는 사람들의 무대에는 조명이 필수
전부 다,
하수구 위 머리카락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