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시 학교로

by 김현이

9 다시 학교로


2019. 8. 28.


개학하고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저절로 가는 게 시간인지라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던 지난 일주일 동안 주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계절이 뒤바뀔 무렵 마음을 평소대로 유지하기란 좀 쉽지 않은 것 같다. 바람부터가 더 부드럽고 햇살은 강하지만 피해가고만 싶지는 않았고 조금씩 따뜻한 것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무덥지 않은 여름이었던지 가는 시점에서도 뭔가 석연찮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가을은 무척이나 짧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이지, 그러면 모든 것들은 새로 옷을 바꿔 입고 이름을 바꿀 것이다. 9월이 코앞이니 이런 생각도 지나친 것만은 아니리라.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어서 9월이 오기를 바랐던 내 마음은 온대 간데도 없이 지금 이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인지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든다.


큰아이는 학급회장이 되었고 작은아이는 여전히 학교에 나가야 하고 막내는 방학이 없는 길고 지루한 여름을 보냈으며 나는 다시 서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작은아이의 학교생활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 작은아이의 난독증, 나는 정말로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 치료 수업은 이전의 수업보다는 더 차분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두 시간 동안 화장실 한번을 가지 않았으니까. 들어가기 전 얼마나 당부를 했던지 아마도 아이에게도 적잖은 부담이었는지 2시간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오는 아이의 표정은 묘한 승리의 기운마저 보였다. 아마 스스로가 잘 이겨낸 시간에 대한 일종의 만족스러움이었으리라. 시작하기 전의 심리적 부담감을 인내심으로 이겨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을 방해하고 위기에 처하게 되는 순간들 자체는 어쩌면 삶 자체를 더 훌륭해지도록 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난관들이 없다면 지속적인 평범함 가운데서 아마도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거나 특별히 아무 일도 하지 않지 않게 될 것이며, 그런 생활 속에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위험을 인지하고 피해가려고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수록 더욱더 삶을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극한의 고난을 경험해 볼 필요는 없을 테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지극히 현재의 생명체라는 것이 당장 오늘 안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삶 자체를 더욱더 값진 것으로 생각할 줄 알게 된다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당연히 그런 날들을 살고 있고 작은아이도 그럴 것이라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 제제는 언제나 글로리아 누나에게 이 말을 한다. 하지만 밍기뉴에게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밍기뉴는 제제가 마음을 주고 제제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이해해 준 친구였기 때문에 밍기뉴와 함께 있는 한 그런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덧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섰고 드디어 포르투갈 아저씨, 마누엘 발라다리스를 만나 둘 사이의 관계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지려면 어떤 극적인 계기가 있기 마련인데, 제제와 아저씨와의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박쥐놀이, 그리고 유리 조각에 발을 찔려 크게 다친 일이 그렇게 둘 사이가 친구가 되도록 만든 사건이었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질문해 온다. ‘어떻게 아저씨와 꼬마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당연히 나의 대답은 왜 될 수가 없느냐는 것보단 친구란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친구는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이 누구와도 될 수 있는 거란다. 봐, 당장 너희와 엄마도 친구 사이가 될 수도 있어. 친구처럼 지낸다면 말이야. 아마도 세상 누구보다 가깝고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가 있어. 너희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너희가 엄마의 마음을 알고 서로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언제라도 의지가 되고 힘을 줄 수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군것질도 같이하고 자전거도 함께 타고 놀이터에서도 놀고 끝말잇기 게임, 보드게임도 함께 하잖니. 그리고 이건 처음 하는 말이지만 너희랑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갈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 줄 아니? 물론 편의점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 재치고 이것저것 무얼 먹을까 고민하면서 주인 눈치를 보게 하는 너희 행동에 잔소리하긴 하지만 사실 엄마도 무엇을 고를까 고민이 되거든.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으니까. 하지만 참는 거란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너희와 아무리 친구 사이라 해도 남들은 여전히 나를 엄마로 볼 테니까. 엄마가 하고 싶은 중요한 말은 이렇게 진정한 친구 사이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야. 진정한 친구 사이로서 겉모습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밍기뉴는 비록 라임오렌지나무지만 제제의 둘도 없는 친구이고 앞으로 잘 지켜보렴. 포르투갈 아저씨와 제제가 얼마나 다정하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지. 아저씨와 제제는 할아버지와 손주 사이와도 같아 보이지만 말이야. 중요한 건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가까이 곁으로 가는 거야. 그런 면에서 엄마도 너희에게 친구이고 너희도 엄마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란다. 바로 우리는 우정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때, 막내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차분히 말한다.


‘맞아요, 엄마. 친구는 서로 걱정해 주는 거잖아요. 엄마는 언제나 우리를 걱정해 주고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잖아요. 그리고 언제나 엄마는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해 주잖아요. 가끔 혼내기는 해도.’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을 나는 항상 내 아이들을 통해서 실감한다. 때로는 나보다 더 속이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통해 부족한 나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더 사랑하는 나로 바꿔나가기 때문이다.


2019. 09. 01.


“엄마! 어서 와 보세요. 해가 빨개요. 꼭 사진 찍어야 해요.”


이번 여름은 지나간 몇몇 여름들과는 조금 달랐다. 해가 없었던 새벽과 밤이 되면 어느새 기운이 서늘한 바람이 창문을 가로막은 따뜻한 공기를 밀어내고선 집안으로 들어왔고 그래서 나는 그 흔한 환절기 감기를 못 들어오게 하려고 한 개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이들 옷장 정리도 예년보다는 조금은 서둘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내게 두 형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텅 빈 거실에서 홀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막내가 달려와 이야기했다. 저쪽 산에서 해가 너무나도 붉으니 꼭 사진을 찍어서 할머니에게 보내드려야 한다고.


우리 집은 큰 창들이 모두 다 남서쪽으로 나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멋진 석양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 집을 떠나기 가장 싫은 이유를 댄다면 석양이 보이는 베란다 창을 떼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 수야 없으므로 만일 언제라도 이 집을 떠나야 할 때면 무척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테고 정말로 운이 좋은 날에 해가 산 아래로 떨어지는 절정의 순간, 나와 중간쯤 있는 철로에서 기적소리가 간신히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열 두 개의 객차를 데리고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것이라도 겹쳐 보게 된다면 정말로 이곳처럼 멋진 저녁 풍경이 있는 집도 없을 거라고 떠올리게 될 테니까 말이다. 마침 아이가 사진을 재촉하던 순간은 바로 내가 지금 말하는 그 순간이었다.


내 허리춤에 닿을 정도인 막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막 지나가는 기차는 지금 서울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금요일 저녁이 되었으므로 제 각자 돌아가야 할 집으로, 그런 것도 아니라면 모처럼 주말을 맞아 짧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타고 있어서 객차 안의 분위기는 평소 이 시간대의 기차 안보다 들떠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 준다. 산 너머 뒤로 두 마리 의 곰돌이 구름 모양이 보이는 것은 해님이 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가 어쩌다 외로운 날 두고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라고 이야기 해 준다. 아이의 눈에 보이는 저 붉은 광경, 쉽게 잊히지 않을 풍경이 될 저녁노을은 나와 함께 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결코, 다시는 똑같은 풍경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을 사진 몇 장에 가두고 금세 꺼져버리는 노을을 뒤로한 채 돌아서며 나만의 상상으로 조금은 얼굴이 상기되기도 했다.


석양빛. 흰 구름을 붉게, 붉은 해를 흰빛으로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물들이다가 이내 큰 한숨을 토해내고 산 뒤로 쓰러져 버린다. 마치 한 쌍의 연인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의식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난 뒤의 한숨처럼 축축하고 희미한 연기가 산꼭대기 언저리에 흩뿌려져 있다. 서로를 격정적으로 끌어안고 뒹굴면서 내뱉은 뜨거운 숨처럼 어질러진 구름을 이제는 아무런 의지도 없이 가볍게 덮고 누워있는 두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것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상상이었다. 절정은 허무하게도 그렇게 산꼭대기에서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고 곧 달이 찾아온 공간을 검푸른 빛으로 물들이는 밤하늘로 뒤덮이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무섭게 타는 석양도 스스로를 끌 줄 알고 있다는 듯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받고 그제야 아이의 손을 잡고 등을 돌린다. 이제는 다시 현실로.


인생을 왜 사느냐는 질문은 어리석다. 이제까지 이유를 중심에 두고 살았다면 이제라도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쪽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왜 사느냐고 삶의 의미를 묻는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인생관이라서 주변인을 지치게 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갈 때 그 삶을 영위하는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다.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 더 많은 책임이 가능해진다. 그 책임이란 바로 나 자신이 스스로 부과한 의무이며 숙제와도 같은 것이라 타인이 대신해 주는 것은 결코 의미가 없음을 오히려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나 삶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를 질문만 반복하며 살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의 존재 근거를 알고 난 그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타당하고 근거 있는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그 결정은 이유에 중심을 둔 삶의 선택보다 가능성 있고 구체적이며 명확한 선택이 된다. 삶은 거의 언제나 선택의 연속으로 연결되는데 그 결정 과정에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 바로 그 선택자가 인생의 우선순위에 무엇을 두고 사는 사람이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로 주관이라고 여긴다.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걸 극복하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헬랜 켈러


작은 아이가 치료 교실을 나가면서 보통의 기준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삶의 역경을 비관해서 더욱더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생활의 전환점으로 삼아 극복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대기실에서 아이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에 조금 나아질 거라는 희망적인 기대가 없다면 기다리는 동안을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고만 여기게 될 것이다. 큰아이와 막내가 지루해하는 걸 보면서 교실을 들락거리며 화장실을 자주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난 내가 졸리고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며 계속 카페인을 마시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상황도 지나치게 비극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서도 우선순위에 대한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안이함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작은 아이를 함께 기다리는 형과 동생이, 수업이 끝나면 거의 평소대로 햄버거 가게로 달려가 원하는 맛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은, 수업 중 교실 밖으로 나오게 되면 알게 되는 엄마의 표정, 그리고 이제라도 조금 편안하게 있어야지 마음을 놓고 있는 나 자신이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내 안의 그 순간의 우선순위는 작은 아이로 들어차서 외면으로 보이는 나태함이 대적하지 못할 만큼 강한 내적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뽀르뚜가, 슈르르까 그리고 제제. 거의 끝나가는 이야기. 큰아이가 내 눈 끝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고 말았던 날, 이 이야기의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새벽, 또한 다시 한 번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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