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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1. 2020

제 6 장

51. 예상할 수 없는 사람    


숫자에 동그라미 그리고

leave, left를 쓰는 것

다가올 날, 멀어지는 날

둘이 합하면 아무리 가는 날

변해가도 언제나 같은 수    

나는 네가 잠자면 일어나고

나는 네가 깨어나면 잠을 잤다

꿈속에서라도 만나기 싫어서

그렇게라도 피하고 싶었다    

나는 너에게 무엇도 아닌 사람    

너는 나에게 하루, 일주일, 한 달을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예상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동그라미 열 번, 백번, 천 번

그린만큼 또 그리고 나면

그때 넌,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다    

leave, left는 충분히 의미 있는 낱말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그 의미를

너는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 그 낱말    

주어를 버렸기에 너는 모른다.

또, 영영 모르기를 바란다    

예상할 수 있었지만 

동그라미 그린 그날부터

너는 예상할 수 없는 사람 되고    

나는 여전히 오늘 아침에도

어제, 일주일, 한 달 전에 지나던

그 길가를 지나간다, 하지만

그래도 넌 이제는 나를 예상할 수 없다    

쉬지 않았던 동그란 빗물이

길가 분홍빛 덩굴장미 꽃송이 

전부 다 떨어뜨려 놓고 쉬러 갔구나    

매일 매일 지나가던 이 길가

이아침 꽃길이 되어 있구나    

고맙다 너에게

제 몸에서 꽃잎 떨어질 때의 그 아픔

누가 알아주기나 하랴 속상하지 마라

나는 알고 있으니

내 마음 이 길 지나갈 때마다

수천 번 주저앉아 보았으니    

고맙다 

오늘 아침 이 길

꽃길로 와 주어서    

leave, left의 합은 같아도

동그라미에 가둔 숫자는 매일 변할 것

우리는 서로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    

오늘 아침 나는 이렇게

장미꽃잎 수놓은 꽃길 걷는데    


덧붙임 : 보들레르는 희망의 염세주의자였을까. 비 갠 후 아침, 상쾌한 공기가 마음에 무척 들어 아무리 우울한 시를 써도 그 기분 유지할 수가 없다. 보들레르는 꼭 그런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 새벽같이 상쾌한 날 악의 꽃으로 욕망의 시를 쓰고 웃었을 것 같은 통일성이 없어 보여도 알고 보면 굉장히 공통점이 많은 상쾌함과 우울함. 7월이 왔으니 그것도 오늘은 첫날이니 동그라미를 그릴 때도 어떤 날보다 신중히 본래의 동그라미보다 더 동그랗게 그렸다.  

                                                      

52. 떠날 때     


미처 버리지 못한 마음에 

내 마음 미쳐 버린 듯 울었고

아, 눈물겹다 나는

아무리 알아도 알아봐 주는 이 

하나 없는 나 눈물겹다    

아쉬운 것 없던 그 사람

나도 그 같은 마음으로 간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는 것

사랑도 끝났다는 것    

폭풍 맞아도 끄덕 않던 내가

네 한숨 한 번에 나, 지는구나

그래서 그렇게도 나는

네 마음 갖고 싶었나 보다

너도 나같이 져버리면 좋았다    

떠남의 최대의 적은 미련

널 보며 나는 수백 번 고민했다

아파도 데려가야 하는 건지를

내가 두근댈 수 있는 것만

아프지 않은 것만 데려가야지g 

나 그걸, 간직하길 잘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야지

두 번 다시는 간 곳에서 떠나오지 않아야지    


덧붙임 : 막내의 일곱 살 생일이다. 단우는 무엇이든 적당하다. 체구도 성격도 마음도 사랑도, 그리고 슬픔에 대해서도.                                        



53. 소망하는 것들은    


온종일 비 오는 날

해를 보려고 창가에 앉아 있는 것    

그믐날 밤

보름달에 소원 빌고 싶은 것    

골짜기 개울물에서

수평선 찾아 사방을 둘러보는 것    

함박눈 소복 덮은 길에서

빨간 양귀비 꽃밭 기대하는 것    

한낮 쏟아지는 볕 아래서

별똥별 떨어지길 바라는 것    

그건 철없는 아이의 꿈같은 것    

네가 하도 그리워서

다 잊어버려야지 다짐하는 것    

차라리 눈감아버리지

기대하는 것은 그리움의 부작용

아직까지는 약도 없는걸    

그리움에 통증이 올 때

차라리 눈감아버리지    

비오는 날  해

그믐밤 보름달

산속 수평선

붉게 물든 함박눈

푸른 하늘 검은 별     

그리워 아플 때

가만히 눈 감아버리지

잊는다 생각하니 다 보이는 걸    


덧붙임 : 작은아이가 난독증 센터에 다닌 지 꼭 1년이다. 오늘은 상담 후 어찌할 것인지 결재를 해야 한다. 엊그제 통지 문자에 작은아이가 유달리 밟힌다. 가봐야 하는 것. 그 끝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것, 없더라도 마음속에 품은 희망으로 가보는 것. 용기 내어야지 생각한다. 


54. 기억의 모래성을 비추는 등대    


그녀는 언제나 마르고 허기진 채

희고 투명하고 창백한 얼굴로 

그에게로 다가갔었기에 

그는 만질 수가 없었죠, 그녀를     

그는 오만한 매력적인 얼굴로

한 마리 경주마처럼 다가왔었기에 

그녀는 쉽게 만질 수가 없었죠, 그를    

아이 숨결 같은 꽃송이와 같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던 그녀를

차마 힘주어 만질 수 없었어요    

힘이 셌던 그를 감당 자신 없어

떠나가도 바라보지도 못했어요, 그녀는    

이제부터 우리는

기억의 모래성을 쌓아요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해요

작은 파도에도 쉽게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만큼 

사소한 추억만 남겨놓고 잊어봐요    

폭풍우가 일렁이는 밤바다

조각배에 홀로 노래 부르는

끔찍한 그 날이 오더라도 

이제부터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해요

그것만을 용서라고 생각하니까.     

다시 마음속의 평화를 찾아요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요

오직 그대 노력만으로 찾아요    

희망적인 사실 한 가지 알려줄까요?

누구도 도와주지는 않아요

하지만, 스스로 찾아낸 평화는 

무엇에도 빼앗기지 않아요    

등대는 난파선을 찾아다니지 않죠

늘 제자리 지키며 빛을 비춰준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잘 있잖아요    


덧붙임 : 엄마는 아이에게 바다의 등대 같은 존재이다. 아이가 크는 것을 두고 나를 떠나는 것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 도리어 엄마인 내가 크는 아이로부터 조금씩 독립하는 것이라,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가 커간다는 건, 나이를 먹는 것과 같이 아쉽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그것이 아들일수록 마음의 단련이 더 필요하다는 것뿐. 그래서 나는 노래를 부른다. 누구 한 명 듣는 이 없어도, 비록 조금은 서글프다고 하더라도 나를 위해서 노래 부른다.                                                                                                                                     

55. 아가야!    


아가야!

겨울이 오는 걸 두려워하면 은 안 돼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한여름 무더위도

온데간데없이 찾을 수 없잖아    

아가야!

캄캄한 어둠도 마찬가지란다

어둠은 환한 대낮의 증거이기도 하지

우리는 언제나 경험하고 확인하잖니    

아가야! 

자, 이제 혼자서 건너가 보렴

저만큼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또 여기

처음 뛰기 시작했던 이 자리로 오는 거야    

눈 한번 크게 떴다 감고 큰 숨 마시고

어서 달려가 보렴

어떠니? 아주 기분 좋은 신나는 일이지?     

아가야! 

이래서 어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거란다

그건 여름과 겨울이 서로 자리를 주고받는 것

낮과 밤, 빛과 어둠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제 자리 내어 쉬라고 배려하는 것    

숨을 쉬듯 당연한 일이란다

서로 미안해하거나 특별히 고마움 없어도 되는 것

보답하지 않아도 되는 엄마의 사랑과 같은 것    

아가야!

그러니 어른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언제나 마음속에 용기를 가지렴

자 보렴, 이 엄마를 

언제나 밝게 웃고 있는 씩씩한 네 엄마를    


덧붙임 :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언제나 이렇게 희망적인 이야기로 용기를 주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고 온통 꿈으로 벅차오르도록 해 주었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었다. 그리고 가끔 나 말고, 누군가한테는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꾸밈없이 말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가끔 나는 사는 게 매우 힘들어, 세 아이가 내게 꽃잎 같은 존재이지만 정작 나는 뿌리가 없는걸. 그래서 어떤 날은 정말로 사는 게 힘이 들어. 그래서 꽃잎 같은 아이들이 감당하기 버거울 때도 있어. 뿌리가 없는 건, 다 살기가 힘든가 봐. 나무도 풀도 사람도.‘                                                                                                                                                            

56. 연꽃    


물웅덩이에 온몸 담고 평생을 살아가도 

그녀의 자태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네

그녀가 말 한마디 하려 입 벌리는 순간

그녀의 향기로운 내음, 우아한 모습에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모두가 말했을 정도였지    

그녀는 물벌레와 모기떼에 둘러싸여 

매일 괴롭힘 시달렸지만

그 질퍽한 웅덩이에 몸을 담고 산다는 것이

그 하루살이 떼를 견뎌낸다는 것이

자신의 운명인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그 또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여태 단 한 번, 그곳을 떠난 적도 

떠나갈 생각 한번 한 적 없었다네    

그래도 언제나 그 모습, 향기만큼은 

고결하고 우아한 채로 부드러웠지

어쩐지 내 모습을 닮은 그녀

어떤 향기에도 등 돌리지 않는 그녀

나는 그녀를 연꽃이라 부른다네  

  

덧붙임 : 오래전, 알고 지내는 언니에게서 ‘너는 연꽃과도 같아’하는 문자를 받은 후 지치고 힘든 그 날들에 다시금 기운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기분 다시 느끼고 위로받고 싶어서 이렇게 짧은 글 적는다.                                                        

57. 좋아하는 소리   

 

접착테이프 먼지 떼는 소리

내가 좋아하는 소리    

맨 먼저,

우리 만나자고 약속하는 소리    

전깃줄 빼는 소리

하나둘, 눈 맞추는 소리

전동 못 돌아가는 소리

고운 네 얼굴 구슬땀 구르는 소리

진공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그 뒤로,

안타까운 우리들 한숨소리

봉투 안에 미련 버리는 소리

전깃줄 연결된 소리

흰 전등 불 들어오는 소리    

고생했다 고맙다하던 마음 소리    

별것 아닌 것, 귀한 것 만드는 소리

마음 뭉클하게  하는 네 목소리    

이젠 너 듣고 싶은 소리 말해봐

그걸 내가 들려줄게    


덧붙임 : 청문감사관실, 민원실 컨테이너로 들어갈 때 이사는 우리 사무실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난 별것 한 것 없지만 완전히 무너졌다 다시 또 정돈된 우리 사무실 보면서 애쓴 직원들에 고마움을 느꼈다.                                            

58. 마지막 약속  

  

시간 가면 잊힐 거라고 했죠

당신 그 한마디에 용기 내었죠

당신 위하는 길 시간이라면

믿을 수 있었죠    

그때 당신 그 말 생각해 봐요

그 말에 귀 기울이며 많은 시간

감당하고 기다렸죠    

소용이 없더군요

시간은 차분히 이성을 찾아도

난 당신 잊히지 않아요    

당신 그 말에, 냉정한 시간에

나는 두 번 속았어요    

그 말에 난 웃어요, 웃었어요

시간 때문에 난 울어요, 울었어요    

당신은 미소로, 시간은 눈물로

나는 그다지도 쉽게 속는 사람이란 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요    

난 언제까지 눈물로 웃고

슬픈 기쁨 느껴야 하는 걸까요    

이제 당신의 그 말,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하던

그 말 빼고는 다 잊었어요    

당신 그 말에 웃어요

시간은 영원으로 가도

나는 소용없어요

여전히 기억나요, 당신 그 말만  

  

덧붙임 : 기다리는 게 지쳐서 떠난다고 말하면 그제야 겨우 왜 그러는지를 묻는 연인은 나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거라면,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미온적인 반복적인 태도는 상대방의 마음조차도 식게 만드는 무서운 게으름이다. 연애도 부지런한 사람이 잘 한다.    


59.  첫사랑   

 

그대 이름 몰랐죠

꽃이 예쁜 줄도 몰랐어요

그대는 그냥 그대

꽃도 그냥 꽃

그대로의 그대, 꽃이었죠

무엇도 멈춘 내 심장

움직이게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대 이름 알았죠

꽃이 예쁜 줄도 알았어요

그대는 나의 그대로

꽃은 철없는 향기로

굳게 닫힌 마음 속 돌문을

활짝 열어주었죠

그건 정말이지

기대도 없던 일이죠    

그대 이름 알았어요

꽃이 시든 것도 알아요

그대는 나의 첫 사랑

져버린 꽃 등불 같은 흰 장미    

그 꽃옆에 앉아

울게 될 줄 몰랐어요

그대 이름 처음 불렀어요

나의 첫 사랑 그대    

첫 사랑은 흰 장미같이 시들어요

영원한 마음의 등불같이 되죠

꽃은 당연히 지는 걸요

첫 사랑 이루는 건 반칙이에요    

멈춘 내 심장, 흔들던 그 이름

그 이름 내 첫사랑이에요    


덧붙임 : 가끔 한 번씩 내가 어디 반쯤은 모자란 사람인가 싶은 순간이 있다. 대학병원 내 약국이 없어 처방전과 약을 바꾸기 위해 적어도 1킬로미터는 걸었단 생각이 든다. 코 앞 약국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건너뛰었고 자동차는 주차공간 걱정에 병원 주차장에 두고 온 것이다. 그래도 걸어서, 모처럼 걸을 수 있어서 크게 자책하지 않았다.


60. 홀로 깨어 있는 이유    


오늘 밤, 나는 여전히 잠 못 이룬다

잠 못 들어 있는 것, 깨어 있는 이유다    

나는 책상 위 전구 아래

벌거벗은 너를 치워버렸다

너를 쓰고 너를 그렸던 그 노트

내던지는 건, 부끄러운 이유다

나를 다 보여주고 잃어버린 이유다    

나는 다시 또 힘없이 무너진다

너를 향해가는 그리움 허락하고

이 밤 내 영혼, 잠에게 미안해하며

다시 또 홀로 깨어 있다    

조금 있으면 아침 해가 솟을 것

내가 버린 영혼은 술에 취한 듯

졸음에 휘청 이는 걸음으로 날아가

막 튼 동쪽, 그 작은 푸른 구멍 속으로

숨어버렸다, 사라져버렸다    

너를 붙잡고 있던 그리움에게

이제 너의 잠을 깨울 시간이라고

서둘러 돌아서라 명령한다    

영문도 모르는 너는

낯익은 향 그득한 그리움에

내 숨결 알아보고 입맞춤한다    

나는 이제 안심해야 하겠지

그리움 너에게 보내줬으니

혼자 울게 한 나의 잠 데리고 와서

끌어안아 아이처럼 타이른다    

미안하다고, 그리움이란 게

어쩔 수가 없나보구나    

이제 그리움 보냈으니

내게 네가 가장 필요하다고

남은 그리움 모두 질식시키고

네 숨결 고르게 나눠주라고

간절히 청한다    

유리창에 붙어있던 어둠 벗겨지면

이제 홀로 잠이 든다

한밤중 그리움 버린 이아침

이제부터 나를 그리워하겠지

나는 이제 홀로 잠이 든다    

사랑하는 이여!    

그 그리움, 밤 되더라도

다시는 돌려보내지 말아요    

난 영원히 이렇게 잠자요

깨고 싶지 않으니까요    


덧붙임 : 밤 내내 비가 왔다. 많이 무겁게 왔지만 조용하고 차분히 내려주어서 나도, 내 아이들도 비 오는 줄 모르고 밤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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