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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1. 2020

제 7 장

61. 분수 앞에서    


그날은 아무 날도 아니었다

단지 날씨가 맑은 날일 뿐

특별히 잘한 일도 없었다    

헹가래로 올려주는 낯선 힘

내 몸 보는 키가 적당한 소녀

무표정이 슬픈 얼굴 그 소녀     

환호도 박수도 없는 날이었다

단지 날씨가 맑은 날일 뿐

뭐라 해도 나는 높이 솟았다    

안간힘 다해 올라갔더니

가벼운 내 몸 물보라로 흩어지고

솟아오른다는 것,

그것만이 내 삶 유일한 목표인 듯

죽을힘 다해 올라갔더니

정말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숨 바친 결과가 고작 죽음이구나    

온몸 형체 없이 없어지는 절정

나는 기어이 뿌연 안개가 되고

여기가 내 끝이구나 서글퍼졌다    

무엇이든 마지막은 슬픈 일

끝까지 아름답기 힘든 것    

걷잡을 수 없이 스친 그 소녀

마지막 소원은 소녀 미소 짓게 하는 일

용기 내어 감은 눈 떠 해와 마주하니

내 몸 오색 빛으로 흩어져 가는구나    

무표정이 슬픈 소녀는 약간 미소 짓는다

그 모습 보았으니 다 된 거라고

나 투명한 색깔로 부질없이 사라진다    

나는 덧없는 속임수 쓰는 분수

그 모습 나의 마지막이 되고

처음 만난 사람 모르는 마음

오색 빛으로 사로잡아 홀렸다

그리고 나선 언제나 발뺌했다    

그러니 나도 다를 바 없는 것

소녀 울린 소년만큼 나쁜 것    

그날은 아무 날도 아니었다

미소 짓게 할 의지도 없으면서

소녀를 유혹하고 돌아서 버렸지    

단지 날씨가 많은 날일 뿐

억지로 등 떠밀려 올려간 곳

거기엔 내 마지막이 기다린 곳    

솔직하게 말하지만

나는 거기까지 갈 마음 없었다    

이제는 차리리 속 시원하다

나도 그 무지개 따라갔으니    

아! 슬픈 소녀야

내 모습, 부디

곱새겨 보지 않기를   

 

덧붙임 : 스물의 한 가운데를 지나던 때, 나는 병원 한가운데 있던 분수대에서 보았던 무지개가 가끔 생각난다. 분수는 작은 인공연못을 뿌연 물안개 자욱한 호수같이 만들고, 운이 좋은 날은 그 끝에 걸리던 무지개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지만, 기억 속에선 내 정신이 온전한 이상은 지워지지 않을 긴 시간 동안 지속된다. 그런 걸 보면 가끔 우리가 의미도 없이 하는 그 말 -추억으로 산다는 - 이 틀린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과거는 바꿀 수 없이 굳어진 형태로 남지만 얼마든지 현재에 따라 기쁘게, 슬프게, 때론 아무 의미 없이 올 수도 있다.  


                                          

62. 꿈속에서 너를 만나려고    


꿈을 꾸려고 잠을 자는 사람

꿈에서라도 너를 볼 수 있기를

널 보려고 잠자는 사람, 세상 나뿐    

그러나 꿈속에서도 못 보고

애써 잠든 잠 깨고 보니

이거 정말로 어리둥절하구나    

잠 바깥에서 겨우 만난 너는

오직 다른 사람과 정답다     

이미 알고 있다 태연한 척

꿈에서 못 이룬 그 간절함이야

잠이 깨고 나니 허망하구나    

정답다 너는, 다른 사람과

다시 억지로 잠들지 않으리

마음에도 없는, 꿈꾸지 않으리   

 

덧붙임 : 태어나서 공부란 걸 진심으로 해본 적이 있다면 단 한 번 그때뿐이다. 이 직업을 만들려고 할 때. 그때 했던 엉뚱한 생각은 잠을 안자도 고단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 까였다.                                                                         

63. 짝사랑  

  

너는 즐겁다

너는 기쁘다

너는 사랑한다

그래서 너는 웃는다    

나는 아프다

나는 슬프다

나도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눈물겹다    

같은 공간에 있는 우리

하지만 우리는 못 본다

네가 다른 쪽 보는 이유다

나만 너를 바라보는 이유다                                                                                                        

64. 만약에 그때    


나 그때, 눈병에 온 세상 붉었죠

별것 아닌 것도 귀한 것으로 보였어요    

나 그때, 그대 빛에 묶여 있었죠

움직이지 못해 한 가슴만 뜨거웠어요    

나 그때, 그대 생각에 잠 못 들었죠

밤새 적은 편지 벅차서 반 접었어요    

만약에 그랬죠

편지지처럼 세상도 접을 수 있다면

한여름 함박눈 내려줄 텐데    

만약이 아니라면

한여름 눈 올 때 그대 보내주겠다고

나 그때 만약은 아니라 하겠죠    

만약에 그랬죠

한밤중 대낮 정오, 낮잠을 자면

나 그때 그대, 보내주겠다고 했죠    

만약에 그런다면 했었지만

이 세상 내 마음같이 반접을 수 있다면

그때, 그대 보낼 수 있을까    

나 그때, 눈병에 온 세상 그대로 보였죠

별것도 아닌 것 귀한 것으로 만들었어요    

그래도 눈은 항생제로 좋아지겠죠

이제 그대 사람도 함께 들어오겠죠    

아무리 사랑해도 마음이야 닳겠어 안심했죠

그것마저도 만약이라 하지 않는다면

두 번은 그대 안 보는 게 나아요    

나 지금처럼, 만약에 

그대만 보아도 그대만 보고 싶고

계속 그대 생각해도 그대만 생각나고

잠들기 직전까지 그리워 잠 깨어도

만약에, 여전히 그대뿐이다 하려면

내 모습 완전함 지킬 수 없다 하여도

세상 접을 수 있는 그때 오더라도

그대를 떠나보내지 않겠다 하겠죠    

만약이라는 말은

그런 날 오는거 어려운거 아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걸 알아요    

만약에, 만약이 이뤄지면

세상에 소용없는 낱말 많을 테죠    


덧붙임 : 사랑인 걸 모르고 누군가로 인해 나 자신이 변해가고 있다는 걸 알고 느낀다면 어쩌면 정말로 나를 변해가게 하는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 단지 그런 마음이 처음이라서 사랑인지 어떤지 판단할 수 없단 것일 뿐, 거의 사랑이 확실하다.                                                                                                                

65. 이사 가는 날    


나는 그 여인 처음 보았던 날 기억나요

동그란 배, 무표정 슬퍼보이는걸

한 손에 작은 손잡고 남은 손엔 큰 가방    

솔직히 나는 누가 올까 기대가 컸어요

꿈꾸던 사람, 그 여인은 아니었어요

나한테 관심 없는 그 여인, 마음 안 들었죠    

찬바람이 얇은 창의 옷자락 흔들던 1월의 밤

그 여인은 동그란 배 끌어안고 

그 앞에 손잡고 온 아이 끌어안고서도

단 한 번을 뒤척이지 않았어요    

그 여인은 말하는 걸 모를까

그 여인은 목소리가 없는 걸까

'반가워', 웃는 소리 들은 적 없었어요    

어느 여름날

여인은 하루아침에 변했어요

동그랗던 배 간데 모르고

울기만 하는 더 작은아이가 왔어요    

이런 식은 곤란한걸

나는 그렇게 마음이 넓지 않은걸요

동의도 없이 다른 사람 데리고 오는 건

사실 내게는 감당하기 벅찬 일이에요    

더 작은아이는 나에게 입도 맞춰주고

온몸으로 비벼대며 껴안아주었어요    

이상해지는 내 마음, 어떤 감정일까

나, 두근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그 여인 우는 게 보였어요

더 이상한 건, 들키기 싫던 내 마음

아이들에 발맞춰 내 심장 뛰게 했죠    

그 여인, 말 없는 대신 

가끔 말없이 내 옷깃에 안겨 왔어요

그러곤 하염없이 밤 별 보았어요    

별빛이 여인 눈에 스미니

밤별보다 더 반짝이는 구슬 있었죠

난 처음으로 그 여인

정말 아름답다, 생각했어요    

이제 나는 돌아봐 생각해 봐요

그 여인 나를 많이도 괴롭혔으니까요

한 여름 물 뿌려 더위 삭여주고

한 겨울 옷깃에 자란 서리꽃 녹여주었죠    

나, 이제야 알 것 같은데

그 여인 사랑하는 것 같은데요    

그 여인 어느 날부터 내게 말했어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그 표시라면서 내게 수도 없이 인사했어요    

난 그런 여인은 처음 보았어요

모두가 냉담하게 대하고 떠나갔으니까    

'누가 이 여인을 붙잡아 줘요'

말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여름 낮 해바라기같이 웃으며 그랬죠    

'가장 소중한 걸 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하는 수 없어요

그 여인 보낼 수밖에는 없어요    

밤별에 더 울지 않는단 걸 

그 여인 그렇게 좋아하던

내 한쪽 창 떼어 주고 싶지만

난 이미 많이 나이 들었는걸요    

내 모습 변한 듯 여인도 변하겠지요

그 여인 간다는 그곳

난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걸 알죠

마음만 아쉽고 아쉬워 서운할 뿐    

그 여인 지키고 싶지만 

난 이제 많이 지쳤어요    

사랑하는 여인이여! 안녕히

미련은 나에게 주고 부디 울지 말길    

한겨울 나에게 왔던 그 여인

한여름 나를 떠나가요    

울어도 아무도 모르는 겨울과 여름

나는 그런 여인 두 번은 못 만나겠죠  

  

덧붙임 : 작은아이를 가지고 형편에 밀려 이사 오게 된 집. 나는 우리 집과 오늘이 지나면 영원히 ‘안녕’ 해야 한다. 여기서 슬픔도 기쁨도 희망도, 그리고 소중한 꿈도 알았다. 울면 바보 같은 사람, 그래서 그동안 편안히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매일매일 인사했다.                                                                                                                        

66. 은유    


내 은유는 간청하는 거예요

제발 나를 이해해 주세요

내 은유는 그대만을 위한 거예요

그대 말고는 누구도 알면 안 돼요    

하지만 내 마음은 내 은유

그대 마음은 또 다른 은유로

우리 이렇게 서로 끌어안아요

고개 끄덕이며 만난 그곳에서

폭발하죠, 환희의 불꽃처럼    

내 은유는 똑같은 걸 교묘히 감추고

그대만 알 수 있게 다가가요

다 닮았지만 오로지 그대만

그 진심의 의미를 알아요    

당신이 안다는 건, 내 기쁨

은유는 그래서 내 마음, 그대 마음

우리 두 개의 마음 일치되어

세상 유일한 순간을 만들어요    

이 새벽

비의 발자국 소리 빨라지는 건

그대 내게 서둘러 오고 있다는 뜻

바로 이건, 우리의 은유에요   

 

덧붙임 : 내일이 이사인데 오늘부터 3일간 비예보다. 그냥 받아들여야지 걱정 없이 ‘잘지나가겠지’ 마음먹는다.                                                

67. 시인에 대한 오해 몇 가지    


폭풍의 고요함에 침묵의 한숨 미안해지는 것

말도 안 된다, 나를 비웃는 그대라고 한다면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그대 숨소리 듣던 그 날, 귀 멀어져 그래요    

불 꺼진 밤 터널에서 맑은 투명함 보는 것

먼지 가라앉는 것도 보인다, 한다면

그 순간 느끼는 외로움, 혼자 있기 아까워요

세상 무너져 모든 빛 몰려와 눈도 못 뜨죠    

아, 그대! 이제 짐작하고 계시나요

그대 모습 보던 그 날, 눈멀어져 그래요    

그날을 일부러 기억해 보아요

그대 내게 참 많은 말 했떠랬죠    

내게 조금도 관심 없던 그대를 보면서

미소로 고개만 끄덕이던 나 때문이구나 

아름답고 빛나는 것만 사랑하는구나

그대 그렇구나 알았떠랬죠    

맞아요, 난 그대 원하는 사람 아니에요

폭풍의 고요함을 듣고 어둠의 빛을 보죠

그것은 세상 분노를 진정시켜주는 걸

그대 그것이 나를 오해한 이유였군요    

폭풍, 한숨, 고독, 암흑, 그리고 눈물

이런 원천은 시만 어울린다고 믿던

바꾸기 힘든 편견의 전형, 그대 탓 이었어요    

그대를 나의 곁에서 사라지게 했던 이유

그제야 들리고, 보이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아! 바로 우리는 만나면 안 되는 운명

그대여! 그대만의 세상에서 영원하길    

기쁨만 있는 사랑은 그 때 뿐

슬픔 아는 사랑은 고통만 있지 않는 것

새 생명으로 새로워지는 시의 소산인 것    


덧붙임 :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을 모른다. 오로지 자신의 기쁨만 알고 있다.


68. 일반적인 일    


당신!

고독함 내비치거나

묘한 분위기 느끼게 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에요

그러니 어서 그 문 열고 나와요    

어쩌다 당신! 그 문 닫으면

우리 이어주던 맛있는 향기도

나를 끌어당기던 즐거운 아픔도

한 번에 끓어져 버렸어요    

그러면 당신! 알고 있었나요

잠자는 내 고독은 밤새 뒤척였어요

그건 더 위험한 일이에요    

당신! 

마음에 새기고 사귀자 마음먹어

그 이름 가장 깊은 데로 데리고 와

그 향기의 끈으로 우리를 묶어

모든 걸 나누어 가졌어요    

이제는 완전히 친해졌다 싶었는데    

당신!

이제는 그 문 열고 들어가지 말아요

닫힐 때 끊어진 줄 매듭으로 묶어도

닿을 때마다 아파요, 어쩔 수 없어요    

정말로 그렇게 될까 두려워

상상조차 겁이 나던 그건

상처, 그 말까지 두려움 되었죠    

우리 사이 이러는 일

일반적인 일은 아니에요

얼룩말 흰 망아지 낳아

세상 놀라게 할 만큼도 아니에요    

깊은 감정 어미 말만 아는

놀랍거나 서글픈 일이죠    

흰 망아지 흰 얼룩말 될 때

그 고독, 평생 모를 수 있겠죠

그러면 좋겠지만, 모를 리 없어요    

일반적인 일 아니니까요

우리 사이 그런 것처럼    


덧붙임 : 몇 달의 원망과 미움이 단 한 번의 순간에 해소되는 수가 있다. 그것 또한 흔한 일은 아니다.                                                                                                                                     

69. 당신께 바치는 나의 숨    


뺨을 스치는 가벼운 향기 느껴져

눈 떠 보았어요

당신 다녀간 줄 알았거든요

머리맡 자장가 두고 가신걸 알아요

아! 내가 그렇게도 바라던 건 줄  

당신 알고 있었군요    

좌회전으로 돌아가는 앵무조개 보았어요    

당신, 어디에 다녀오신 건가요

두고 가신 자장가에 잠들지 못할 만큼

내 마음 들뜨게 되네요    

나는 하루도 비우지 않고 새벽마다

당신 만났던 그 곳에 갔어요

나 울던 거 보셨던 거죠?

나는 그걸 알아요

앵무조개와 입맞춤하면

바닷속 얼마나 깊어져도

끝없이 숨 쉴 수 있단 걸요    

당신은 여기 목동이었어요

나 그곳에서 울다 잠들면 

양털 모와 만든 구름 가져와

하늘거리는 얇은 치맛자락에

덮어주었단 걸 알고 있어요    

이제 앵무조개에 입맞춤 할게요

우회전 세상 속 좌회전 앵무조개는

내게 무한한 호흡을 주는 생명

나는 당신 있는 곳 어디라도 가요    

가벼운 양털 구름에 내 몸 뜨면

이제 숨 참는 입맞춤만 남았죠    

참는 건 바보예요, 세상 가장 하고 싶은 걸

참는 건 바보였어요, 그 바보 싫어서

혼자만 아는 목소리 속삭이던 말    

아무래도 나, 당신 사랑 하나 봐요    

당신 알고 있었죠?

나 숨만 쉬고 있어도

숨만 참고 있어도

무슨 말 할 줄 알고 있었죠?    


덧붙임 : 이사 온 지 5일째, 가족들은 정리가 안 된 집이라도 궁금해서 못견뎌하신다. 오늘 부모님과 함께 모든 식구가 오시기로 했다. 마치 가족 여행가는 기분이 든다. 아, 그리고 거의 모든 조개와 소라는 우회전 방향으로 그 모양을 잡지만 간혹 좌회전, 틀린 방향으로 사는 조개가 있다. 해양 생물학자에게 좌회전 조개의 발견은 생에 두 번 없을 큰 발명이나 행운과도 같단 걸 책에서 읽었었다. 좌회전 앵무조개만 있다면 바닷속에서 무한호흡을 할 수 있다는 작은 아이 말에 글을 써보았다.                                                                                                                        

70. 떠나는 것, 기다림의 시작    


언제나 닫혀있기만 한 저 문 열면

어떨까 궁금했었죠, 하지만 열 수는 없어요    

커다란 방, 저 문 하나

어느 날 갑자기 결심도 없이

열어봐야지 행동했어요

그 마음, 더 누르지 못했어요    

아!

가벼운 밀침에도 밀리는군요

몰랐어요 나는 갇힌 거라고 단념했는데

내 몸 밀치는 공기만 한 가득했군요    

한 여름엔 차갑고 한 겨울 뜨겁던 공기

그동안 꼭 주저 앉혀야 했던가요

한 발은 더 두려워 두발로 뛰었죠    

여기! 그대, 그때 말하던 거기 인가요?

이렇게 나, 계속 떨어져도 괜찮나요?

내 손 잡아줄 수 없는 건가요?    

문을 열어야지, 그리고 나와야지

마음먹을 때 나는, 죽어봐도 괜찮다고 

세상이 끝나도 괜찮겠지 그랬지만

막상 이것이, 눈에 보이는 끝인 걸

어쩐지 서글퍼 울고 싶네요    

이대로 떨어지는 것

그대와 떨어지는 것    

흙냄새 가깝고 나는 곧 닿고 말겠죠

흙도 단단한 마음먹는데, 어쩐지 기뻐지네요

그렇지만 내 눈은 이제 울어요

지난밤, 막 울고 싶던 져버린 밤들

수도 없이 참았던 슬픔 주어다 울어요    

소리도 없이 그대도 없이

그리고, 남은 한숨의 무게도 없이

내려갈 때의 이 기분, 처음이죠

몰랐어요, 두려움에 떨리지만 

정말이지 괜찮을 것 같아요    

다시는 갈등하게 될 문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해요    

어릴 때 그때로 돌아가요

나 이미 돌아왔어요

공중그네 어지러움 몰랐던 나로

떨어져도 품 내어주던 엄마 있던 때

나 어릴 때 그때로 돌아와요    

혹시, 다시 열고 싶은 문 나타나면

두 번 망설임 없어요, 한 번에 열겠어요

한 발부터 먼저 나가도 겁은 안 나요    

무모한 행동 아니죠, 하지만

혹시 그대, 이런 날 보며 고민하나요?    

다시 나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전처럼 나를 꼭 껴안아야 하는지를    

저 문 열고 나가면 다시 나는 못 와요

올 수 있다 해도 돌아오지 않아요    

그대 이렇게 내게 가깝던 사람이던가요

이제 울고 싶어지면 웃어버리고 말죠

바보 같아도 웃을 용기 냈으니까요    

가 버린 걸 다시 가져와 웃는 건

지나친 바보죠, 나가보니 알겠어요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요, 절대로

문고리는 안에만, 내 안에만 있던걸요    

이제야 선명하게 보이네요

하늘같은 호수, 소실점 맞춘 가로수길

붉어져 버린 하늘, 함께 붉은 구름도

언제나 냉정한 그대 모습까지도    

그대 안녕!

이제는 내 손, 잡지 마요    


덧붙임 : 무엇이든 떠나간다는 건 아픔도 따른다. 길든 짧았든 간에 함께 나눈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 돌릴 때의 서늘함은 앞으로 다가올 바람에 쉽게 소멸한다. 설령 이따금 다가와 괴롭히든 혹은 미소를 짓도록 하게 하더라도 그 순간은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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