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이 평년기온을 웃도는 추위였다고는 하지만 아직 열살이 채 안된 아이들한테는 두꺼운 잠바없이 한 낮이 훌쩍 지나간 오후 시간을 그냥 돌아다니기에는 매서운 추위였으리라 생각한다. 정확한 날짜가 벌써 가물가물하지만 저녁 밥상앞에서 아이를 다그치며 조각조각 캐낸 대화를 내 머릿속으로 조합하자면 엄마로서는 앞으로도 쉽게 잊히지 않을 일화로 기억이 될 것이리라....
정우와 선우는 아파트 단지에 유일하게 자리잡은 사설교육 - 태권도 학원에 다닌다. 일하는 엄마가 시간의 융통을 부릴 수 있는 여지도 되지만 한창 크면서 넘쳐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는 태권도만큼 좋은 운동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많이 의지를 해 왔던 곳이다. 그런데 겨울 방학은 아이들의 스케쥴을 내가 도맡아서 관리해 주어야만 했었던, 어떻게 보면 아이들과 나에게 지루함과 인내가 공존하며 참을성을 견뎌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오후 3시에 태권도에 가서 그럭저럭 1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4시반이 되면 집에 돌아와 있으면서 엄마인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하루 평균 2시간 동안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오로지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불안하면서도 아이들을 믿었고 그리고 어느정도는 안전하다고까지 여긴 나의 확신은 퇴근 후 처참히 찢어진 돼지저금통을 알아보고 나서야 착각이며 오만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우야 선우야, 왜 배 안고프니? 엄마는 배고픈데.. 맛이 없는거야?"
"아니, 그냥 배가 안고파."
아직은 생각을 계산하는데 좀 더 서툰 일곱살 선우가 대답한다.
"돈가스도 먹고, 감자튀김도 먹었더니 배가 안고파."
찢어진 돼지통에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큰 아이 정우와 눈을 마주친다.
"황정우, 돈가스를 어디에서 먹었어?"
"응~ 화요 장터에 돈가스 파는 아저씨가 주셔서 거기서 먹었어."
"그래? .. 흠... 그럼 감자튀김은?"
"우리가.. 사먹었어..."
"돈을 어디서 났는데?"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아니,,, 감자튀김 살려고 선우꺼랑 내꺼 돼지통 찢어서 돈 거기서 꺼냈어..
음.. 천원짜리 두장이랑 백원짜리... 음..... "
아이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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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돈가스 파는 아저씨가,
"너희들 여기 왜 왔니?"
"너무 추워서요.."
"이리와서 이거 먹어라."
한겨울 잠바도 입지 않고 장터를 서성이는 아이들에게 시식용 돈가스 대신 온전한 낱장을 먹기 좋게 잘라서 아이들 앞에 내 주시면서,
"엄마는 어디가셨니?"
"경찰서요."
선우의 외마디 답변을 듣고 한 마디도 없이 돈가스 한장을 더 잘라 내 주셨다.
돈가스로 배를 불린 두 녀석은 집으로 들어와서 돼지통을 찢어 돈을 꺼내고 다시 장터로 나갔다. 분식집에서 감자튀김 두 봉지를 사서는 한 봉지를 그곳에 놓인 빨간색 플라스틱 둥근 탁자에 앉아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다른 뜯지도 않은 감자튀김을 들고서 다시 돈가스 파는 아저씨한테로 갔다.
여덟살 정우가 감자튀김 봉투를 내밀면서,
"아저씨, 이거 드세요.. 아저씨가 저희한테 돈가스 주셔서 보답할려고 사왔어요."
"괜찮아.. 너희들 집에 갖고 가서 먹어라."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누가 도와 주면 꼭 고맙다고 인사하라고 했어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던 아저씨는,
"엄마가 정말로 경찰서에 가셨니?"
"네!"
"끌려가신거야?"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큰 아이 정우는 ,
"일하러 가셨어요. 우리 엄마 경찰관이에요."
대답을 했다.
아저씨는 아이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던 모양이었다. 정우가 내민 감자튀김 봉투를 건네 받고서는 치즈돈가스라고 하시면서 돈가스 세장을 바로 튀겨내어서 정우한테 주시려 했다는 거다. 엄마 퇴근하시면 같이 먹으라고 하면서...
나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마음에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삼켰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눈물을 보일수가 없었다. 그날 일어났던 일련의 상황에 대해 요목조목 집어가며 잘한 일과 잘못했던 일을 칭찬과 훈계로 마무리 지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아이들의 엄마였으니까. 그 포상으로 하루에 얼마씩의 용돈을 주기로 약속을 지었다.
그날 정우는 그 아저씨가 건내는 돈가스를 받아 오지 않았다. 그 작은 아이들은 돈가스가 먹고 싶었고 그래서 항상 그 앞에 놓여 었던 시식용 돈가스를 먹기 위해 나갔다는 걸 안다. 하지만 별 생각도 없이 잠바도 벗어재친 채 양말도 안 신고 있어서 누가 보아도 너무 측은하게 보여지는 작은 꼬마 녀석의 모습이였단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어떡해서라도 그 딱한 아이들을 내치지 않고 보듬어준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니 엄마로서 마땅히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번 장이 서는 화요일 저녁이 되면 퇴근하기가 무섭게 장터로 달려갔다. 그러기를 네 번,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만나보고 싶어서 이렇게 계속 조바심을 내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처음엔 그저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도 준비해 갔었지만 만남의 어긋남이 반복되면서 이러다 그 사람에게 제대로 인사 한번 드리지 못하게 될까봐 조바심까지 생긴다. 나는 또 다시 화요일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그래서 정중하게 고개 숙이며 인사드리고 싶다. 그 날 내 아이들을 그렇게 따뜻하게 챙겨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라고....
아직도 너무한 계절의 나의 돈가스 튀기는 총각과의 연애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고 고대한다. 내가 꼭 보답을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