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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은조연]
제33편. 춘분의 눈

밤과 낮의 길이가 춘분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by 김현이

제 작년 파출소가 이사를 오면서 화단에 심은 나무들이 작년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다. 화단과 정수기를 가르는 두꺼운 유리벽 사이에 서서 나는 언제나 내 갈증을 풀었다. 그리고 나뭇잎 한 장 달려있지 않은 나무들을 바라보면서도 ‘얼마나 목이 마를까.’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춘분, 한 겨울처럼 눈이 내렸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유리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보란 듯이 내 목마름을 해소했다. 그런데 죽은 나무에 솟은 하얀 꽃송이들이 내 두 눈을 사로잡았다. 눈 특유의 결정체, 말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양의 눈꽃이 피어나 있었다. 저 나무들은 조만간 뿌리째 뽑혀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서 밑거름으로 사그라져버릴 운명이었는데 어떻게든 마지막으로 혼신의 기운을 낸 것인가 이런 착각마저 들었다. 언제나 죄책감 없이 내 갈증만을 풀었던 나를 두고 얼마나 원망을 했을까. 첫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던 눈꽃이 조금씩 서글프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작년 여름 내내 저 죽어가는 나무들을 살려내려고 양동이에다 물을 날라다 부어주느라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모를 것이다. 물을 알맞게도 줘 봤고 아예 철물점에서 가장 긴 호스를 구해다가 수도꼭지에 연결해서 정말로 화단에 물이 넘쳐 흘리도록 뿌려줘 보기도 했었다. 문제는 물이 아니라 다른 밑거름이 부족했었던 것일까. 어쩌면 막 옮겨 심은 나무를 잘 돌봐주는 방법도 모르면서 내가 아이들을 대하 듯 그저 내 고집대로만 했던 것이 나무들을 죽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아침에는 정우네 학교를 거의 떠받들고 있다 시피 한 담장에 우거져있는 개나리 나무에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꽃잎을 보았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작년 봄에 보았던 만개한 진노란 개나리 꽃 담장을 회상했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아침, 갑자기 내린 눈 속에 파묻힌 애처로운 꽃망울들을 보았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눈 속에서 연노란 빛을 내는 꽃망울들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된 꼬마전구처럼 보였다.


시골의 춘분은 농사준비로 한창 분주한 때다. 엄마는 작년 겨울에 여태 한 번도 심어본 적 없는 인삼을 심으셨다. 할일을 줄여보고자 그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시작의 준비가 많아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평소 이맘 때 보다 더 일거리가 많아 보였다. 거의 일주일이 넘도록 품삯 일꾼까지 부리면서 저녁때까지 인삼밭 꾸미는 일을 하시는 것 같았다. 이미 겨울 내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어린 인삼 뿌리가 볕을 이길 수 있도록 기둥을 세우고 검은색 차양을 씌워 놓는 것으로 엄마는 인삼 키울 준비를 춘분, 만일에 눈이 올 것을 예상하고 서둘러 끝내 놓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춘분에 내린 눈은 아직 잠이 덜 깬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마지막 한번 남은 자명종의 울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아직 봄이 온 것은 아니니 유난히도 춥게 얼어붙었던 작년 겨울이 그 쓸쓸한 퇴장이 두려워 마지막 허세를 부려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은 본질적으로 물의 순환과도 같은 것이다. 단지 모습을 달리할 뿐 살짝 핀 개나리 꽃망울처럼 이미 봄은 겨울 속에 와 있었다. 퇴근시간이 다된 무렵 나는 2층으로 연결된 계단의 중간쯤에서 서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창 너머 경치를 바라보았다. 태양이 서쪽 산 뒤편으로 완전히 넘어갔으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임에도 그 빛이 얼마간 남아 있었기에 실제로는 낮이 훨씬 더 길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듯 밤과 낮의 길이가 춘분의 전부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잠시동안 언제나 부지런하고 성실한 저 태양처럼, 그 볕을 받고 태양을 향해 자라는 식물들처럼,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의지하는 존재들에게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학생다운 다짐을 해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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