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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Sep 11. 2023

내게도 드디어?

데이트

맥그로드 간즈를 떠올리면 JJI cafe가 생각날 만큼 참 많이도 들락거렸다. 그날 아침도 눈곱만 떼고 겨우 나와 맥스가 끓여준 짜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내 자리는 언제나 탁 트인 산들이 마주 보이는 창가 앞 테이블이었다. 티베탄 브레드를 버터에 굽는 냄새가 난다. 곧 내 아침이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맥스 외에도 식당일에 참견하는 이들이 많다. 요리를 마친 맥스는 내 아침을 내어주며 소개를 시작한다. 


“송, 여기는 첫째 잠난, 둘째 짐마, 셋째 잉솔이야. 세 형제 이름의 첫 자를 따서 JJI Cafe 지.” 


그들은 실 사장님인 어머니를 도와 카페 일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티베트의 가수라고 하였다.      




티베트는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람살라 곳곳에는 분신자살을 한 사람들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모두 독립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다. 티베트는 본래 자치권을 가진 국가였으나 중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중국과 티베트인들 사이에 충돌이 생겨 엄청난 수의 티베트인들이 학살되고 통치자인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 여러 나라에 망명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것처럼. 남 일 같지 않은 슬픈 역사다.      



JJI형제들도 독립을 위해 곡을 만들고 부르며 나름대로의 투쟁을 하고 있었다. 동지애를 가져서인지 그릇을 비우고도 한참을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하공간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일으켜 세우는데 덥석 잡힌 손목이 신경 쓰인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또 다른 공간이다. 세 형제가 주로 지내는 곳이라서인지 카페의 분위기가 아닌 가정집이다. 악기들이 모여 있는 한쪽 방에서는 연습공간이자 친한 친구들이 오면 함께 합주하며 술도 한 잔씩 하는 장소라고 했다. 온 김에 노래를 한곡 해주겠다고 하니, 신이 났다. 잠난은 노래와 기타, 짐마는 베이스 기타, 잉솔은 드럼을 주로 연주하는데 다들 악기를 잘 다뤄서 파트가 바뀌기도 한단다. 셋이 대충 눈을 맞추더니 내가 좋아하는 스팅의 'shape of my heart'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반주가 나오자 소름이 돋는다. 

'내 플레이리스트를 본 건가?' 

그럴리는 없다. 나는 그 당시 mp3에 이 곡을 버전별로 가지고 있을 만큼 좋아했다. 인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푸네와 델리에서도 멕글로드로 오는 버스 안에서도 늘 함께 했던 노래.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티베트인에게 스팅 곡을 듣게 될 줄이야. 눈물 나는 라이브가 끝이 나고 나는 일어서서 고함을 지르고 감동받은 만큼 힘 있게 박수를 쳐댔다. 


“송, 이제 뭐 할 거야? 내가 일일 가이드 해줄게.”


잘 됐다 싶다. 맥그로드에서 산길로 박수폭포까지 가는 길이 궁금했는데 아무리 대낮이라도 혼자서는 무서워서 시도할 수가 없었다. 잠난이랑 가면 되겠다 싶어 감사히 허락했다. 아침부터 황홀한 경험에 기분이 좋은 데다 산길은 고요하고 상쾌하니 행복은 큰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싶다. 잠난은 중간에 ‘모모’(티베트만두) 맛집도 소개해 주고 ‘짬빠’도 사주었다. 짬빠는 미숫가루 같은 곡물가루인데 물과 잘 섞으면 찰기가 있는 반죽이 된다. 오늘 잠양이 사준 짬빠에는 초코와 코코넛가루가 입혀져 있어 비싼 디저트를 먹는 기분이었다. 세 개째 입에 몰아넣는데 흐뭇하게 바라보는 잠난과 눈이 마주친다. 


"야, 네가 자꾸 쳐다보니까 눈이 마주치잖아. 그만 봐."

"아니, 너처럼 먹는 여자 처음 봤어. 티베트여자들은 많이 안 먹거든. 근데 보기 좋다."

'어쩐지, 다들 말랐더라.' 


박수폭포에 가까워질수록 인도관광객들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거대한 폭포까지는 아직 조금 가야 하는데 비가 오는 것처럼 물이 튄다. 잠난은 신발을 벗더니 폭포에 발을 담근다. 

Bhagsu nag


“너도 들어와, 진짜 시원해.”

“뭐라고? 잘 안 들려!”


폭포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리기도 했지만 내게는 더 이상 양말과 신발을 벗는 큰 일을 할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문득 오늘 세수를 안 했음을 깨닫고 물고기들에게 미안하지만 얼굴은 씻어본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인데 얼음장처럼 차다. 이 물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Bhagsu nag


돌아가는 길은 산길이 아닌 또 다른 마을 다람곳을 통하기로 하였는데 이곳 또한 여행객들이 많아 재미있는 상점과 레스토랑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저녁으로 피자를 먹고 돌아가기로 했다. 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마을길을 따라 다람곳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어둑어둑 해지는데도 마음이 급해지지 않고 잠난이 있으니 든든하다. 피자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방금 화덕에 구운 따끈하고 쫄깃한 도우 위에 현지조달 홈메이드 토마토소스와 치즈의 조화가 신선했다. 간이 별로 없어 심심할 수 있는데 재료 본연의 맛으로 고소하고 담백해서 계속 먹다가 한판 더 시키고야 말았다. 치즈도 사장님이 직접 집에서 만드신다며 친히 치즈 보관실로 안내해 보여주신다. 잠난은 옆에서 뿌듯하게 웃고 있다. 여기서도 사장님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바람에 집까지는 오토릭샤를 이용하기로 한다. 


“오늘 진짜 완벽한 가이드였어, 잠난. 고마워.”

“덕분에 내가 즐거웠지. 굿 나이트!” 


다된 밤에 들어가는 집은 처음이다. 


“송! 어디 갔다가 이제와! 너 남자친구 생겼어?”


옆집 벨기에 친구가 장난을 건다.   

   

“오우, 제발, 내 바람이자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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