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활짝 열고 오늘의 날씨를 예측해 본다. 흙냄새가 많이 나는 것이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다. 눈곱도 안 떼고 자연스럽게 어제 읽다가 잠들었던 책을 집어 들고 살랑살랑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읽어내려간다. 곧 심각한 카페인 중독자는 커피가 당긴다. 귀찮지만 몸을 일으켜 맥스가 있는 내 단골 JJI Cafe로 향한다.
"Hi."
"Good morning."
며칠 있었다고 마을 분들이 밝게 웃으며 인사해 주신다. 눈을 맞추고 밝게 인사를 하면 뭔지 모를 기운이 솟아난다.
그런데 저 멀리 ‘세 얼간이’가 보인다. 그는 여전히 고무신을 신고있다. 나는 반사적으로 숨었다. 순간 생각해 보니 왜 숨었을까 싶어, 안 숨은 척 나왔는데 바로 앞에 있다.
“야, 우리 너 다 봤어, 왜 숨어?”
정확히 말하면 오빠들을 보고 숨은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을 본 내 신경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사실, 나는 수세미 머리가 부끄러웠다. 외국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내 머리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머리가 왜 이 모양이 되어 버렸는가 로 시작해서 나이, 전공, 사는 지역 등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조금은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무나 한테 이러면 안 되지 싶다.
미안한 마음에 식사를 청해 본다. 커피와 함께 책을 읽으려는 계획이 무산되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단골 음식을 함께 먹고 같이 행복하기로 한다. 버스정류장 두 갈랫길에서 오른쪽 길로 쭉 내려가면 남걀 사원이 있다. 그 사원 앞에 오전에만 나와 묵을 파는 할머니가 계신다. 작은 리어카 앞에 메뉴판처럼 보이는 표지판에 한국말로 ‘묵, 3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어느 한국인 관광객이 써줬다며 웃으시는데 그 뒤로도 항상 웃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 매일 들러 묵을 먹었다. 세 얼간이는 당황한다.
“아니, 뭐 어디 5성급 식당에 데려가는 줄 알았더니만.”
투덜투덜하던 입에 묵을 욱여넣더니 활짝 웃는다. 금세 한 그릇을 먹고 또 주문을 한다.
자신 있게 한국말로,
"할머니!" 부르더니,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편다. 한 그릇 더 달라는 뜻이다. 찰떡같이 알아들은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으며 한 사발 더 맛있게 말아 주신다. 그들도 아마 한국의 묵 맛을 생각했을 것이나 이곳의 묵은 좀 다르다. 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부서지는 한국의 묵과는 달리, 옥수수가루로 만든 '라핑'은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이다. 간장베이스는 우리의 것과 같으나 약간 다른데 묵의 식감과 참 잘 어울리는 소스이다.
오빠들은 특이하다고만 할 뿐 내 머리에 대해 묻지 않았다. 오히려 물은 적 없는 본인들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그들의 우정, 작곡한 노래, 찍은 사진, 그 간의 여행 등 별로 안 궁금한데 상세히 다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들을수록 창의적이고 참신한 인생이야기가 재미있어지면서 이들이 궁금해졌다. 대화를 할수록 참 구김이 없고 나이를 먹었는데도 해맑다. 문득 이들처럼 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장난스럽게 풀어내는 인생이야기이지만 교훈이 있고 어딘가 모르게 겸손하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멋져 보였다.
"우리가 앞으로 머무를 만한 적당한 게스트 하우스 좀 소개해줘"
나는 조금 귀찮았지만 마음을 숨기고 성의를 다해 맥그로드에서 가장 유명하고,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소개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오빠들은 그곳이 어딘지 당최 모르겠는데 나의 귀찮음이 확연히 드러나서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