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창 03

by 이해린

<3>

문제없다고 몇 번을 말해. 나 멀쩡하다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 너무 감정적이야, 너무 눈물이 많아, 너무 비합리적이야! 그 놈의 너무, 너무, 너무! 그러는 너는 나한테 너무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 그런 말을 들으면 멀쩡한 사람도 스스로를 바보구나, 난 멍청하구나, 이렇게 여길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런 생각 안 해봤지? 그랬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네 입에서는 그런 말이 잘도 술술 나오는 거야. 네가 우는 건 부담스러워, 문제를 해결할 생각도 없이 손 놓고 있는 거로만 보여, 너랑 얘기하는 것보다 벽이랑 하는 게 더 말이 통하겠다. 넌 참 그래. 넌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신기한 재주가 있어. 나 문제없어. 네가 날 바라볼 때 문제가 생기는 거면 문제는 너한테 있는 거겠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연은 그날 밤 침대에서 몸을 돌려 누운 채, 하지 못한 말을 오래 곱씹었다. 입 안을 맴돌다 결국 내놓지 못한 자모음의 날카로운 조각을 바닥에 두고 하나씩 정렬했다. 오랜 분류 작업 끝에 나란히 줄 선 단어와 문장은 귀를 찌르는 비명과도 같았다. 아무리 질러대도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면 망정이지, 소음 취급하며 지나쳐 버릴 게 뻔해 보였다.


연은 한참을 고심하다 작업의 결과물을 한데 묶어 창 밖에 내다 버리기로 결심했다. 꺼내지도 못한 말이었다. 여태 머리속을 쟁쟁 울려대 연은 한 시를 쉬지도 못하고 그 소리에 짓눌려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연을 제외하고는 어떤 누구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그러니 별 수 없는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입 밖에 내놓지도 못한 걸 뭉쳐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면 그 말을 담고 있던 마음은 쓰레기 통이 되는 건가, 연은 잠시 망설였다. 어쩌면 그럴 수도, 내 마음이 쓰레기통이어서 나오는 것마다 쓰레기인 걸 수도 있지.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08화창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