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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04

by 이해린

<4>

연의 집 안에 가장 창이 많이 난 방에는 식물이 자란다. 처음에는 몇 가지의 화분에 틔운 싹이었는데 줄기가 뻗쳐 나오고, 꽃과 열매가 맺히는 걸 반복하더니 점점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잘 자란다고만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그 때는 이미 한참 늦었다. 식물의 생장은 끝도 없이 계속되는데 그걸 간과한 건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식물의 한 팔이 접히면 다른 팔은 배로 길어지고, 한 잎이 떨어지면 다른 가지에서 새 잎이 돋아 났다. 식물은 언제 생명을 다할지 모르는 것처럼 치열했고, 동시에 생의 유한함 같은 건 아무래도 별 상관없는 것처럼 무심했다. 그렇게 하루씩, 한 시간씩, 일 분 일 초씩 살아 냈다.

“너희들은 나보다 오래 살겠구나.”

연은 그릇에 담은 물을 조금씩 흘려주며 말하기도 했다. 식물의 잎은 사람의 귀를 닮아 오므린 모양대로 소리를 담아 들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연은 이따금씩 물길을 내면서 이런저런 말을 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잎맥 결을 쓰다듬기도 하고, 줄기를 살살 어루만지기도 했다. 움푹 패인 선과 볼록 나온 면의 감촉은 제각기 달라서 눈을 감고 선과 면을 따라 오르내리면 생명줄이 이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연은 유일하게 식물을 위해서 창을 열었다. 진녹색의 생명체가 바람을 맞아 조금씩 몸을 떨어댈 때면 연의 마음도 요동쳤다. 잔잔한 두근거림은 식물의 떨림이 멈추고 난 이후에도 오래간 지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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