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연은 바깥을 밟지 않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연은 바깥을 밟은 적이 없다. 그게 불가능하거나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믿기 나름이다. 연은 기어코 바깥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굳건히 믿는다. 아기들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지 않나,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은가, 어른이 되어서는 직장을 다녀야 할 텐데. 그렇지만 연은 이미 합당한 기준과는 걸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 아마 이전에도 그랬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연이 이 곳에 태어나지 않은 이상 바깥 출입이 없었다는 건 불가능한 추론이지만 아무도 이 사실 관계를 증빙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직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억이 허락하는 한 연은 바깥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다.
그 곳은 밟아서는 안 되는 미지의 영역이고, 미지로 남아야만 하는 곳이다. 이유는 오직 하나,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느 곳에 놓여있을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건 바깥 세상을 무한히 위험하게 만든다. 연의 집 안은 대부분의 경우 정돈되어 있고, 특별한 일이 아니고 서야 고요하다. 어느 방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연은 잘 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더러는 자연적으로 몸이 아파올 때도 있다. 하지만 연의 세상에는 의료 기관이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절박한 통증과 예기치 않은 신체적 고통이 찾아온다 한들 애초에 병원을 떠올리지 않으니 바깥 세상에 병원이 몇 만개가 있어도 연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 자연스럽게 시작한 고통을 인위적으로 끝낼 필요가 없다는 게 연의 지론이었다. 어떤 경위로 시작된 고통이든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고통은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중요한 건 먹거리다. 연은 유기체인 탓에 반드시 영양분이 있어야 한다. 체내 최소한의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고 합성하는 과정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한다. 이것 만이 연이 유일하게 따져야 할 정보다. 하루 두 통의 물과 빵 한 장, 나머지는 수많은 창으로 채운다. 연은 시시각각 햇빛이 드리우는 복도나 바닥에 누워 볕을 쏜다. 턱없이 부족한 음식 섭취로 결핍된 영양소는 광합성을 통해서 얻는다. 제한된 음식은 매일 연에게 견딜만한 고난을 선사한다. 연은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점점 작아지는 자신과 한 뼘씩 넓어져 가는 집안을 조용히 관찰한다. 정오를 지내고 해가 점점 기울어지면 햇볕이 비스듬히 창 안으로 기어 들어온다. 연은 가느다란 햇볕 줄기를 쏘이면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완전한 존재가 되어 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