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나를 깨우는 한 문장
‘이 모든 것이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은 일인 양, 그의 마음속에서 공허한 꿈처럼 사라졌다. ‘
- 스콧 피츠제럴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오래전 영화로 봤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책으로 읽었다. 길지 않은 단편인데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가적 상상력과 특유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영화대로 좋지만 역시 원작을 책으로 읽는 것만은 못한 것 같다. 너무나 능청스레 ‘뻥을 치는’ 스코트 피츠제럴드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시대의 대표적 작가인 그의 글은 매우 기발하고 우스꽝스럽고 장난스럽게 진행되다가 문득 쓸쓸하게 마무리되곤 한다. 70대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나이를 거꾸로 먹다가 결국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벤자민의 이야기 또한 그렇다.
문학동네가 펴낸 동명의 단편집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피츠제럴드는 이 이야기를 마크 트웨인의 발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 요지는 ‘슬프게도 인생은 최고의 대목이 제일 처음 오고 최악의 대목이 맨 끝에 온다’는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다른 모든 것이 정상인 상태에서 그 반대의 경우를 이 이야기를 통해 실험해 본 것 아닐까.
노화와 죽음이 최악이라고 한다면 그것부터 시작하는 인생은 어떤 것일지,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지를 벤자민 버튼의 입장이 되어 상상해 본다. 젊어 보이거나 철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은유적 표현이고 실제로 그런 일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하리라. 그게 다행일 수 있다.
순진무구하고 아무 걱정이 없었던 어린 시절과 꽃다운 청춘 시절로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시간은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흐른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결국 우리는 처음 온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야기 속 벤자민의 마지막처럼. 그건 정해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깜깜해졌다. 하얀 요람과 그 위에서 움직이던 희미한 얼굴들, 우유의 따스하고 달콤한 향기가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최고의 행복이 먼저인지, 최고의 불행이 먼저인지 예단할 수는 없다.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건 매 한 가지다. 우리 삶은 우주의 긴 시간 속에서 본다면 찰나 보다도 짧다. 그걸 생각하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속을 끓이고 말 것도 없다.
지난날을 그리워하게 되는데 지금 이 순간도 훗날 떠올려 보면 행복했던 지난날이 될 것이다. 결국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