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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r 30. 2021

건축 탐구: 지역 밀착형 공공 도서관이 궁금하다면?  

서울 은평구 신사동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새로운 길'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서울 은평구 신사동 비단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윤동주 시인의 시 '새로운 길'의 첫머리에서 이름을 따온 도서관이라는 데서 우선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서관 공간은 이름만큼이나 시적 일지 궁금했다.

마을도서관은 존재만으로도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이 어떤 풍경일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가 도서관에 들러 조간신문을 보고, 자녀들 학교 보내고 황금 같은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된 주부는 도서관에 앉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다.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 자녀를 위해 엄마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하굣길의 아이들은 책을 보며 꿈을 키운다. 마을 도서관에서는 음악회와 영화 감상회도 열린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으로 말하자면 동네 사랑방이며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공부방, 돌봄 터이기도 하고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채워주는 곳이다. 이 모든 기능을 포용하며 주민 공동체에 스며들어있는 도서관을 디자인한 건축가 조진만(조진만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자연의 메타포(은유)‘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도서관이 자연을 닮았다는 것인가? 자연이 도서관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인가?

조진만 건축가의 답은 '자연스러우면서 자연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도서관'이다.  

“ 도서관이라고 하면 그려지는 그런 도식적인 공간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지역 밀착형 도서관인 만큼 주변의 자연과 공간이 물 흐르듯이 통하는 공간, 그 안에서 길을 잃은 것 같지만 전혀 두렵지 않고 어색하지 않은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8년 6월 문을 연 이 도서관은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전형적인 서울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1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비단산으로 연결되는 자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왼쪽에는 서신초등학교, 오른쪽으로는 어린이 놀이터와 신사 근린공원이 있다. 정면 벽에는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을 적은 동판이 붙어있다.  이 시의 첫머리에서 도서관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 자락에 들어않은 도서관의 돌출부는  숲이 도시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 같다 (조진만 건축가 제공)

신나게 뛰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소리다.  모름지기 마을이라면 이런 소리가 들려야 하는 것 아닌가.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참 많은 것을 앗아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생각도 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서관 오른쪽의 야외 계단으로 올라가 본다. 폭넓은  계단에 내리쪼이는 오후의 긴 햇살이 정겹다.  따스한 햇살 아래서 길고양이들이 한가롭게 즐기고 있다.

당초 설계공모에서 제시된 대상지(사이트)는 결코 만만한 조건이 아니었다. 산자락에 있는 부지(건축면적 694㎡)는 넓지도 않고 역사다리 꼴 모양에 9m의 고저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도서관에 담아야 할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무척이나 많았다. 서울 은평구는 30개 초등학교, 18개 중학교, 16개 고등학교가 몰려있다. 도서관 주변에만도 학교가 6개나 있지만 문화 인프라는 하나도 없었다. 은평구민 1만 2800명은 문화적 욕구를 수용할 수 있는 도서관 건립을 바라는 동의서를 제출했고, 그 결과 오랜 숙원인 도서관 건립이 추진된 것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이었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건축가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과제였다.

조 대표가 이 도서관의 키워드로 떠올린 것은 자연과 소통, 그리고 이를 통한 관계성이었다. 가로와 놀이터, 숲이 모든 방향에서 모든 방향에서 경계 없이 연결되고 도서관의 내부 프로그램들과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공원 속으로 확장되는 개념을 구상했다. 조 대표는 “높은 벽으로 가로막혀 가로에서 곧바로 공원으로 진입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을 도서관의 야외 계단을 통해 접근하도록 해 주고, 공원과 놀이터 등 기존 편의 시설들을 도서관의 공간들과 연계하도록 재구성했다”라고 설명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아래에 개구부가 있고 그 위로 정육면체 두 개가 포개진 모양이다. 정면에서는 공간의 볼륨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계단을 통해 근린공원 쪽으로 올라가 산책로 입구 쪽에서 비스듬히 바라보니 볼륨감이 제대로 드러난다. 산의 지형을 따라 오르막으로 만들어진 넓은 계단과 건축물의 돌출부가 삼각형과 대각선 등으로 기하학적으로 그려지면서 공간에 리듬감이 넘친다. 건축 외관을 그리는 선은 산의 흐름에서 이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건축물의 볼륨 대부분은 산자락의 일부가 되어 지형 속에 자리하고 있고, 노출되는 돌출부는 마치 숲의 일부가 도시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말을 건네는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단산 중턱과 엇비슷한 고도의 도서관 건물 지붕은 산을 바라보면서 계단식으로 설계해 야외 공연장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이곳에서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가 열린다.

조 대표는 “건축이 비단산에서 도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배치했고 상부 돌출부의 외부는 숲의 연속이자 내부로 직사광선을 여과하는 역할을 하도록 은은한 초록색의 강화섬유 레진 그레이팅을 사용했다”라고 말했다.

이 도서관에는 일반적인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메인홀이 없다. 공원의 각기 다른 레벨에 맞춰 모두 여섯 개의 출입구를 만들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무한한 지식의 공간을 만나고, 반대로 어느 곳으로 나오든 동선이 숲으로 연결된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하굣길에 언제라도 가볍게 들러서 이웃과 만나고 친구와 함께 책을 보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자유로운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

도서관은 코로나 19 상황이라 방역을 고려해 제일 아래층 (G층) 입구만 사용하고 있다.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오른쪽에 위치한 어린이 자료실이다. 3900여 권의 장서를 유아와 어린이 자료로 구분해 비치해 놓았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어린이 자료실 열람석 전면의 큰 창을 통해 비단산과 근린공원,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 놀이터 쪽 출입구를 통해 드나들며 놀이와 독서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자연과 벗하며 독서와 놀이가 함께 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한 말이 떠올랐다.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어린 시절의 동네 공공 도서관이다.’

어린이 자료실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조진만 건축가 제공)
어린이 자료실 열람석 전면의 큰 창을 통해 비단산과 근린공원,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 자료실에서 한 층을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 원래 신사 근린공원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지만 이 출입구는 코로나 상황에서 닫혀 있다.) 메인 공간에 해당하는 1층 종합자료실이. 개방형 복합공간으로 설계된 이곳은 흰색을 주로 사용해 밝고 넓어 시야가 확 트인다. 공간감이 있으면서도 포근한 둥지처럼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은 바닥, 천정, 계단이 자연스럽게 유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산비탈의 지형을 살려 오르막으로 자유롭게 독서할 수 있는 계단식 열람공간을 만들었다. 계단식 열람석은 종합자료실의 홀에서 음악회가 열릴 때엔 객석으로 바뀐다.

개방형 공간으로 설계된  종합자료실의 계단식 열람석과 계단을 따라 벽에 서가를 설치했다.
계단식 열람석은 종합자료실의 홀에서 음악회가 열릴 때엔 객석으로 바뀐다.( 조진만 건축가 제공)

계단을 오르면서  쪽으로 붙박이 서가가 설치돼 있다. 붙박이 서가에 꼽힌 책들을 보면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개방형의 디지털 자료실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인터넷, 문서작성, 원문검색, 문서 출력과 스캐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 브리지 공간에는  쪽으로  창을 바라보는 열람석이 마련돼 있다. 특히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공간이다.

  도서관은 시문학 특화도서관으로 2 전체를 시문학 자료실과 시문학 전시실로 운영하고 있다.  윤동주 기념도서관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곳곳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만날  있다. 2층에서 나가면 바로 하늘과 숲을 만날  있다.

주민들의 열망이 씨앗이 되어 탄생한 곳인 만큼 조 대표는 세부 설계를 진행하는 동안 주민들의 공청회에 꼬박꼬박 참여하면서 마을 도서관에 대해 바라는 것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했다. 설계도 여러 차례 수정하고, 수없이 모형을 만들어 보면서 주민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한 결과 크지 않은 도서관에서는 강연, 독서모임, 음악회,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조 대표는 “공공도서관의 관습적 유형에서 탈피해 건축을 매개로 도시와 자연, 사람과 지혜가 분절 없이 연속된 풍경 속에 펼쳐지는 지역 밀착형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내 숲 도서관은 소통과 관계성의 건축”이라고 강조했다.

 도서관은 개관 이후 사단법인 더불어배움에서 은평구의 위탁을 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배경임 관장은 “시문학에 특화된 마을 도서관으로 소통과 치유의 공간이   있도록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면서 “건축 공간에 주민들의 요구가 대부분 반영된 덕분에 만족도가 매우 높고 주민들이 마을 도서관에 특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주민들을 위해  달에  번씩 음악회를 열었지만 코로나 상황에서는 요즘은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서 2층에 새로운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공간을 증축할 계획이다.   도서관은 6호선 새절역 3 출구로 나가서 숲쪽으로 가면 만날  있다. 연희전문 시절 윤동주처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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