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하고 수평적인 구조로 형성돼 있다. 대기업에서는 vertical structure에 맞게 직급에 따라 일이 나뉘고 상하관계가 있는 반면, 스타트업은 horizontal structure로 갖추어져 있어 팀별로 소통을 하고 모두가 같은 선상에 있는 구조이다.
이런 수평적인 구조를 유지하고자 스타트업들에서는 흔히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policy가 종종 보인다. 직원들 간의 친밀도 형성을 위해 다른 부서 직원들과 커피 챗을 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기도 하고, 회의 시간에 누구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장려를 한다.
그러나 몇 달 동안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며 관찰한 결과, 직원들 간의 친밀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투명하고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임원이 어떤 선택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대기업의 문화와 달리 스타트업은 분명 모두가 솔직해질 수 있는,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 결정을 따르는 문화를 추구하고자 했는데, 이게 안되고 있었다.
스타트업 A는 직원들 간의 친밀도가 매우 높았다. 회사 외의 시간에도 개인적으로 만나고, 회식도 2주에 한 번씩 하고, 매주 금요일은 다 같이 회사에서 술을 마시며 게임을 하는 회사였다. 팀원들끼리 서로 내적 친밀감이 높아지다 보니,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쌓은 친분을 해치기 싫어 오히려 냉정해질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개발팀이 만약 디자인팀의 wireframe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개발을 하는데에 차질이 생겨도 디자인 직원과 친하다는 이유로 불편해지는 상황을 만들기 꺼려했다. 결과적으로 해를 입게 되는 건 스타트업의 제품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 제품의 퀄리티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반대의견을 내지 않는 이상 암묵적으로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결정이어도 진행되는 상황이 발생됐다.
그럼 과연 스타트업들은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되, 이런 지경까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이건 C 레벨의 책임이 가장 큰 것 같다. 직원들끼리의 관계가 좋은 건 물론 너무나도 좋은 상황이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회의가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거나 각 직원들 별로 개인적으로 물어봤을 때 사실 다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대표가 개입해야 할 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대표는 회의에서 이게 맞는지, 각 직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분위기를 주도를 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도 이게 맞지 않는데 직원들이 어떠한 반대의견도 없이 동의를 해버리면 이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실용적으로 해볼 수 있는 해결책은 영어로 'devil's advocate'이라고 부른다. 회의를 할 때마다 무조건적으로 반대의견만 내게 하는 팀원을 지정해서 다른 팀원들과 계속 아이디어를 뜯어보며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좀 더 다양한 의견이 반영된 제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