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요가복을 사다

엄마에서 나로 독립한 날

by 혜성

엘리베이터를 타니 10월부터 요가 수업 추가 모집을 한다는 공문이 눈에 들어온다. 15명 정원이 차면 수업을 개설하오니, 관리소로 전화 신청을 하라는 안내다. 퇴사를 하고 집에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운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아기 둘 낳고 키우며 회사 생활을 하는 12년 동안 특별히 운동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딱히 취미생활도 없었다. 그저 회사와 집을 오가며, 낮에는 직원으로 저녁에는 아이 돌보미로 투잡을 뛰며 살았다. 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아이들에게 갖고서. 그게 내 삶의 최선이라 생각했다.


내가 없는 나의 삶.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회사에 있었던 낮 시간에 집에 있게 되자 집안일과 육아 혹은 아이들 교육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깨고 일어나고 씻고 밥 먹고 온라인 수업하고 학원 가고 다시 집에 와 밥 먹고 숙제하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 24시간은 분명 나의 것인데 나의 시계는 아이들의 리듬에 맞춰 움직였다. 아이들이 늦잠을 자면 늦잠을 자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숙제를 하기 싫어하면 왜 싫어하는지,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어떻게 알려 줄 것인지 나의 모든 신경은 아이들에게 향했다. 아이들이 오늘 어떤 메뉴를 주면 좋아하고 먹을지 고민했다. 나야 뭐 밥하고 김치를 제일 좋아하니까.


아이들 학기 중에는 학기 중이어서, 방학이면 방학이어서 나는 바빴다. 챙길 게 그날그날 그때그때 생겨났다. 매일 마음이 분주했고 몸이 피곤했다. (회사) 일을 하지 않는데 (집안) 일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아이들이 피곤해하면 왜 피곤하지? 뭐 맛있는 걸 해 줄까?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가까이 가서 안쓰러워하는 내가, 피곤해하는 나에게 왜 피곤한지 묻지 않았다.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운동도 애들 학원 알아보러 다니듯이, 여기저기 다니며 알아보는 일이 먼저다. 날 위해 그걸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보지 않았다.


‘나에겐 그럴 시간이 없어. 애들 케어하는 일만도 얼마나 벅찬데….’


요가 수업 공고를 보고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말로만 해야지 했던 운동을 이제는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관리소에 신청을 했는데 봉이가 시무룩하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 의아했다. 봉이가 학교 가 있는 시간이라 엄마가 수업을 하는 것과 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냥 싫어. 엄마 요가 가는 거 싫어. 집에 없는 거 싫어.” 봉이는 요가에 질투를 느꼈나 보다. 준이를 보니 준이도 그렇게 내켜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리고 묻는다. “한 달에 얼마야?”


준이와 봉이의 반응에 나는 언짢아진다. 졸졸졸졸 자신들을 따라다니며 눈 뜨며 잘 때까지 옆에 있는 엄마.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사다 주든 해 주든 자판기처럼 대령하고, 하고 싶은 운동이 있다면 돈 생각 않고 등록해 주고, 원하는 브랜드의 옷에 신발에 슬리퍼까지. 아이들은 엄마를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그건 바로 나였다. 스스로를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하루 24시간이 내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짜여져야만 만족했던 나.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나. 회사에서는 성실한 직원으로, 집에서는 알뜰살뜰한 엄마로 살아야만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던 나. 인정은 다름 아닌 내 기준에서의 인정이었다. 그렇게 해야 인정받는다고 내 스스로 여겼던 것이다. 내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나는 나를 희생시켰다. 엄마 나이 열세 살이 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요가 수업에 등록을 하고, 요가복을 사러 백화점 개장 시간이 한참 남은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선다. 백화점 앞 스벅에 들어가 큰 잔으로 커피를 받아 와서 식기를 기다리며 햇살이 쏟아지는 창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어쩌면 이미 엄마 품이 좁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들을 ‘아이’라고 품에 꼭 껴안고 있던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이면에는 아이들을 놓지 못하는, 아직 자기 자신으로 독립하지 못한 엄마가 있는 게 아닐까. 나 스스로 엄마 아닌 나로, 자립된 한 인간으로 생활할 때 아이들도 그런 엄마를 한 인간으로 인정하며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아닐까.


적당히 식은 커피가 식도를 타고 빈속으로 들어간다. 엄마라는 포장에 휘감겨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했던 어리석은 자의 머릿속을 찌르르 깨운다. 어느새 백화점 문 열 시간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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