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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Oct 25. 2021

그녀의 김치찜엔 특별한 것이 있다

수상하게 달콤한 비밀 레시피

저녁거리로 김치찜을 만들면서 고기 잡내를 제거할 소주가 보이지 않는다. 먹다 남은 맥주를 넣는데, 오른 손목 인심이 후하지가 않다. 잡내야 뭐, 마늘도 있고 후추도 있고 설탕도 있고, 무엇보다 김치가 있는데 맥주가 뭐 별 도움이 되겠어. 마음의 소리를 오른 손목이 들은 게 분명하다. 살짝이 뿌리는 시늉을 하고 왼손이 가져온 쿵푸팬더 유리잔에 오른손은 남은 맥주를 예의 바르게 따라 준다. 거품은 잔의 5분의 1이 되게, 거품의 끝선이 유리잔의 주인이 될 어른의 입술에 살포시 닿도록, 다 따른 맥주병이 고개를 들면서 주책맞게 침을 흘리지 않도록 다 따르고도 5초간 기다린 뒤, 주인은 그 청량한 기품을 자랑하는 잔을 들고 식탁으로 가 앉는다.


맥주잔 앞에 순위를 빼앗긴 김치찜 냄비는 서둘러 문을 닫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속에서는 주인 가족을 맛으로 기쁘게 하겠다는 충성의 맹세인지, 나를 주목하지 않고 그깟 보리 비린내 나는 시골뜨기 음료에 넋을 빼앗긴 주인에게 느낀 주체 못 할 서운함 탓인지, 그도 저도 아니고 그저 김치찜으로 태어난 존재 이유를 사심 없이 증명하는 것뿐인지 알 수 없지만, 맥주잔을 기울일 흥이 돋도록 옹왈웅왈 보글바글 끓는 리듬이 기가 막히다.


정확히(아마도) 다섯 모금으로 나누어 마시니 반 모금이 남아 잔은 주인의 하명을 기다린다. 새 병을 딸갑쇼? 됐다, 네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 거기서 조용히 기다려라. 여봐라, 오른손 장군과 왼손 장군. 냉장고 속 차갑게 보관된 보리 음료 뚜껑을 열라. 단단히 잠겼을 터이니 조심하라. 혹 과하게 흔들면 잔에 닿기도 전 아래로 흐를 것이니 차분히 열고 잔에 옮길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


오른손과 왼손은 주인의 명을 받잡아 과묵한 힘을 발휘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 김이 빠졌던 맥주는 새 병에서 따라진 김 가득한 새 맥주에 흥이라는 바통을 이어 준다. 그래그래, 너희가 고생이 많다. 어디 고기 잡내를 없애는 것뿐이냐. 월요일 저녁 식탁을 책임지느라 메뉴 고민하고, 고기 손질하고, 무거운 김치통 들고 와 김치 포기 꺼내고, 마늘 까서 손질한 이 주인어른 딱딱한 마음에 찰진 안마 해 주느라 수고했다. 니들이 시원~하게 긴장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않았다면 어찌 저녁이 따뜻이 차려졌겠느냐. 내 안다, 내 알어, 니들이 얼마나 애썼는지 내 알어. 고맙다.


띠띠띠띠. 엄마~, 엄마~, 엄마~. 현관문을 열고 세 남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맥주잔과 김치찜 냄비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던 주인어른은 식탁에서 일어난다. 키도 목소리도 밥 먹는 속도도 다 다른 세 남자를 웃으며 맞이한다. 김치찜은 어느새 맥주와 친해졌는지, 고기 잡내 하나 없이 부드럽고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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