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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Nov 10. 2022

연기 속으로

하따 맛나다. 이눔의 것이 두 번을 먹어도 기가 막히고 세 번째 먹어도 코가 막히게 입맛에 척척 맞네 맞어, 허허. 엊저녁에는 점심 걸 뎁혀 줘서 좀 짰는디 말여, 오늘아침에는 새로 끓인 게 맞구먼. 얼큰하고 따땃하니 좋네. 새벽에 좀 썬득해야 말이지. 가뜩이나 무릎이 시린데 애들은 뭐시 답답하다고 창문 한쪽을 열어놓고 말이여. 찬바람 맞은 어깨에 아래턱까지 덜덜 떨었당께. 쟈들도 더 늙어봐야 뼈에 바람 솔솔 들어가는 소리에 잠 깨는 심정을 알겄지. 


오메오메, 저저, 저 썩을눔의 애편네 보게. 비싼 육개장을 입에 넣었으면 처묵고 말지 사람들 다 보는 디서 말이여 울고 지랄이래. 어린 손주 앞에서 잘헌다 잘혀. 아주 그냥 노인네 체통을 혼자 말아먹고 있구만그랴. 쯧쯧쯧. 


아고, 고놈의 자슥, 얼굴만 달덩이처럼 훤-한 게 아녀, 마음도 이쁘당께. 영특한 것이 고사리 손으로 할매 눈물 딲아주고 있구만. 아구, 잘한다, 내 새끼. 이뻐 죽겄어. 내년에 학교 들어갈 때 가방은 이 할애비가 사줄랑게, 니는 씩씩하게 학교만 잘 댕기면 돼야.


어, 그려그려. 고맙다, 새아가. 짠 육개장을 먹어농게 요 달달이가 더 댕기지 않았겄냐. 너도 한잔 같이 허지 그러냐. 아까 봉께 새벽에 잠을 설쳐서 밥이라고 한 숟가락이나 겨우 떠먹더만, 피곤할 땐 달달이가 최고여!


야, 상태야. 이눔의 자슥아. 후딱 눈꼽 떼고 정신 안 차리냐. 오늘 같은 날만이라도 고개 빳빳하게 들고 목에 힘 좀 넣으랑게, 니 무슨 죄졌냐. 죄가 있다면 늙은 나한테 있겄지. 민우애미랑 민우 봐서라도 정신 똑바로 챙겨야 쓴다. 


아, 알겄소, 알어. 이제 일어난당게요. 근디 그 분칠은 꼭 해야 쓰겄소, 남사시럽게. 그리고 새옷은 입어 뭐한당가요, 손 묶이고 발 묶이고 온몸이 칭칭 묶여서는 그 갑갑한 데에 누워 있을 틴디, 그뿐이요 뚜껑 닫히고 못까지 박혀갖고는 뜨거운 불구녕 속으로……. 워메 깜짝이야, 야는 누구여, 민우만 한 것이 왜 여그 있는겨.


“할아버지, 울어요?”

“예끼, 울기는…. 뭐여, 너 혼자 온겨?”

“할아버지는 여기 왜 왔어요?”

“늙은 할애비가 여기 오긴 왜 왔겠냐. 늙었으니까 왔지. 너야말로 여기 왜 온겨.”

“어려서요.”

“예끼, 이놈. 그게 이 늙은 할애비한테 할 소리냐. 어려서 장례식장에 온 게 말이 돼? 나처럼 늙어야 오는 데야, 여가.”

“진짜예요, 어려서 왔어요. 우리 엄마아빠는 어른이라 명연녕이 있어서 여기 못 온대요.”


뭔 썩을놈의 병마가 면역력인지 명연녕인지 알지도 못하는 어린 것을 잡아먹었다냐. 니 엄마아빠 속이 오죽할까. 


“할아버지는 언제 새 집으로 가요? 저는 내일 간대요. 다른 친구들도 거기 많이 있대요. 그래서 이따가 목욕하고 머리 빗고 새옷도 갈아입는대요. 그리고 비밀침대를 타고 연기가 되어 사라진대요. 그러다가 짠! 하고 친구들한테 간대요.”


나처럼 오늘 관에 들어가냐. 답답하고 무섭다고, 뜨겁고 아프다고 안 울어야 될 틴디.


“그러냐? 그 비밀침대 말이다. 그거 나도 오늘 타러 간다. 너랑 나랑 친구고만 친구. 비밀침대 친구.”

“진짜요? 와, 그럼 내일 친구들 속에 할아버지도 있는 거예요?”

“아마도. 그러니 어여 이 육개장에 밥 말아먹고 힘내서 가자. 니 가방은 이 할애비가 들어줄 텡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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