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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May 14. 2017

[대통령님께]젊은 작가들 책 두달에 한권은 꼭 읽으시길

대선결과 확정 전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으로 '아시아엔'에 기고한 글

대선이 10일 즈음 남았을 때 <아시아엔> 대표께서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으로 글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보자는 것이었지요. 


저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정치현안에 대해서 '정색하고' 쓰는 것보다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가볍게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차기 대통령이 아닌 현직 대통령께 드리는 말씀으로 바꾸면 될 듯합니다.


실제 게재된 내용은 분량이 다소 길어서 글을 다시 수정하여 아래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 

“젊은 작가들 책 두 달에 한 권은 꼭 읽으시길”

- 청춘의 언어도 모국어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정책 이슈, 산적한 정치·외교 현안, 경제문제 등 이제 막 당선된 대통령님께 하고 싶은 말이야 너도나도 넘쳐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는 주문을 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두 달에 한 권쯤은 젊은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시라는 것입니다. 읽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관계 부처 공무원은 물론 시민, 학생, 전문가 등과 함께 2시간 정도 독서토론을 하는 것도 제안드립니다.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하실 수도 있습니다. “경제, 정치, 외교, 국방 등 산적한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한가하게 소설 타령인가요.”


사회과학 도서와 그래프, 통계 데이터를 보고 만들어진 보고서만 주야장천 보고 결재하다 보면, 대통령의 사고가 경직될 공산이 큽니다. 또 두 달에 소설 한 권 못 읽을 정도로 대통령이 바쁘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모진이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소설 속 문구를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아마 대통령님을 지도자로 선택한 꽤나 많은 청춘들 역시 아래와 같은 현실에 포박되어 신음하고 있을 것입니다. 


“취업 시즌이 완전 끝난 올해 봄. 나는 서류전형 한 번 통과해보지 못하고 시즌을 접었다. ‘지원자격: 토익 800점 이상’이라는 문구에서 나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 

‘넌 꺼져.’”

- 심재천 <나의 토익 만점 수기>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호주에서 현군고투(懸軍孤鬪)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영어실력 향상, 정확히는 토익점수 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노력이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노숙하기에 좋은 나라인가.
이것이 내 어학연수행의 첫째 조건이었다. (…)티켓값은 이삿짐 센터에서 두 달간 일해서 마련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을 떠났다. 내가 한국을 떠난 건지, 한국이 날 밀어낸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긴, 똑같은 말이다.
-심재천 <나의 토익 만점 수기>


매년 많은 학생이 어학연수를 떠납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반강제적으로 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 소설에서 호주 생활을 통해 주인공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영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스티브는 우리 청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

- 심재천 <나의 토익 만점 수기>


스티브의 말을 듣고 있자니 너무도 씁쓸해집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호주에서 현군고투(懸軍孤鬪)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나의 토익 만점 수기’ ©웅진지식하우스


정녕 ‘그 나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었다면, 때로는 소설 한 권이 청춘들을 이해하는 데 보다 효과적일 수가 있음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M과 나는 두 시간 전에 서른 번째 입사시험의 면접을 봤다. 오늘 역시 면접관으로부터 ‘됐으니까 그냥 나가보세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번은 쫓겨나는 도중에 인사담당자에게 탈락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개그맨 시험이나 한번 쳐보세요’라며 등을 떠밀었다.

- 김중혁 <유리방패>


드라이아이스. 그것은 마치 무색의, 무취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청춘의 양면성 같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나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미지옥에 갇혀 허우적대는 개미처럼 현실의 갈증에 갉아 먹히는 제 청춘 같았다.

- 홍지화 <드라이아이스>

“드라이아이스. 그것은 마치 무색의, 무취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청춘의 양면성 같았다.” ©작가와비평


소설에 나오는 문장이지만, 그 내용은 소설 밖 현실에서도 생명력을 갖고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위의 소설들을 읽고 나서 청년실업에 대해 재삼 고민해본다면, 더욱 참신한 발상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정책을 고안할 때도 복잡한 법령과 멋들어진 외국 사례집에만 눈길을 주지 마시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십시오. 혹여 읽을 시간이 없다면 참모들에게 선물이라도 하시면 어떨는지요. 


정치권에 대한 실망도 이제 만성화되어 사실 청춘들이 딱히 바라는 게 많지도 않습니다. 친한 후배 녀석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것 없으니 내 앞길 방해만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서는 부디 청춘의 언어와 2030 세대의 표정을 잘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소설도 많이 읽으시고, 때로는 소설책을 선물하기도 하는 로맨틱한 대통령이 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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