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가 서현 교수의 <빨간 도시>
건축가 서현 교수의 <빨간 도시>를 읽었다. 제목부터 강렬하다.
<빨간 도시>는 건축을 이루는 공간 조직은 사회 조직의 물리적 구현이라 생각하는
건축가 서현 교수의 글 모음집이다.
서현 교수의 시선은 ‘건축학자’의 시선이라기보다는
‘사회학자’의 시선에 가까워 보인다.
서 교수는 사회적 호칭이 미발달하여 씨족공동체의 호칭을 원용하는 현상을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대학생들은 입학 후 엠티를 다녀오면 모두 ‘오빠’, ‘형님’이 된다. 식당에는 ‘이모’들이 즐비하다. 거리에는 우아한 ‘언니’들이 게슴츠레한 ‘아저씨’들 사이를 활보한다. (...)
비록 혈연으로 묶인 사이는 아니지만 나이를 기준으로 이런 혈연공동체의 호칭을 원용하는 현상은 아직 이 사회가 씨족공동체의 사회적 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뚜렷한 증명이다.”
- 서현, <빨간 도시> 中
맞는 말이다.
아파트가 ‘계절을 잃은 집’이 됐다는 진단도 기억에 남는다.
“계절의 느낌이 나는 집을 설계해주어야 마땅한 건축가들이 정작 자신은 밀봉된 닭장에 산다. 칼끝의 각도가 요리의 맛을 좌우한다고 설파하던 요리사가 집에서는 냄비에 라면스프를 털어 넣으며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 서현, <빨간 도시> 中
그는 마당이 있던 공간에 계단, 엘리베이터, 복도 등이 들어서며 아파트가 기계와 같은 기능 복합체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우리의 주거에서 시(詩)는 사라지고 설명서만 남았다”는 문장이 가슴을 친다.
“잃어버린 마당은 아직 오지 않았다. 마당이 법적인 연면적에 포함되어야 하니 최대 전용 면적비를 가치로 삼는 시장에서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러니 건설 회사에서 제공하지도 않았다. 세상이 이분법으로만 구분되지 않듯이 우리에게는 완충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이기도 하며 내부와 외부의 어정쩡한 경계이기도 하다. 다시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바로 마당이다.”
- 서현, <빨간 도시> 中
유통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공간’의 의미와 기능, 그리고 사회적 맥락에 대해 늘 주목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의의를 진지하게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는 <빨간 도시>가 반갑다.
‘건축’보다는 ‘사회’에 방점을 찍고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 석혜탁 칼럼니스트 sbizconomy@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