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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Nov 27. 2017

손목과 손의 차이

손목과 손의 차이


지운은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그 사람과의 약속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습니다.


약속 3일 전 늦은 밤

술을 마시자는 

친구들의 부름을 거절합니다.


3일 후 그날 

멋진 모습이 되는 데

해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지운이 기다리던 그날이 왔습니다.

약속 시간 2시간 전에 

일찌감치 도착을 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디가 분위기가 좋을지

어디를 같이 걸을지


그 사람의 취향과 기호를

떠올려봅니다.


그 사람이 왔습니다.

약속 시간 20분 후에 

도착을 했더랬죠.


미안하다며 

배시시 웃습니다.


괜찮아

나도 방금 왔어

라고

속으로 겨우 주절거립니다.

지운은 많이 기다려서

배가 고프다며

아무 식당이나 가자고 합니다.


그 사람 손목을 잡고

고즈넉한 그곳에 들어갑니다.

아까 봐 둔 곳인데

그 사람 맘에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과 얘기합니다.

그 사람과 웃습니다.

그 사람과 마주 봅니다.

그냥 좋습니다.

마냥 행복합니다.


지운과 그녀는 조용한 거리를

같이 걷습니다.

손을 잡고

다정히 걷는 연인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운도 그 사람과

손을 잡고 싶습니다.

애써 눌러왔던 마음을 

오늘 말하려 합니다.


고백의 순간을 위해

어제 무슨 말을 할지

단어와 문장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이젠 말해야겠습니다.

많이 좋아한다고

손을 잡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연인이 되고 싶다고.


그 사람의 손목을 잡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지운을 쳐다봅니다.


그 순간

지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엉뚱한 소리입니다.


그 사람 눈을 보니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머리와 입이

제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 사람의 작은 손을 잡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용기 없이

비겁하게

손목을 겨우 잡습니다.


물론

아주 잠시 동안만


사실 애초에 손목을 잡을 '자격'조차 

지운에게 없던 것이었지요.

지운의 심장은

언제쯤 평정심을 찾고 

지운의 머리와 입은

언제쯤 용감해질까요.


그 사람의 손은

여전히

지운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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