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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Aug 16. 2018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원시사회 이후로, 남자의 적은 여전히 남자다


안희정의 비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오면서 연일 규탄시위와 법리 분석 방송으로 온오프라인 세상이 시끄럽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헌법에도 명시된 법 앞에 평등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법적 해석과 사회적 분노 현상을 떠나서, 왜 이런 사회가 된 걸까 하는 물음 끝에 만난 책을 소개할까 한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인용문이 많아 오늘 글은 좀 길다.)

     

"우리 인간은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종이다. 그 이유는 (중략) 어떤 해부학적 도구보다 더 효과적으로 치아, 발톱, 독침, 피부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서운 도구와 무기를 제작하여 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인간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된 생물학적 적응양식은 해부학적 구조가 아니라 문화라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 고양이나 말에게 지배받을 수 없는 것처럼, 단지 신장이 더 크고 체중이 더 무겁다는 이유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이 자기 아내보다 체중이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는가? 동물 중에는 인간의 남성보다 30배나 더 무거운 동물도 있지 않는가? 인간 사회의 성적 지배관계는 양성 중 어느 성이 더 크고 더 강인한가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어느 성이 방어기술과 공격기술을 장악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니까 지구상 모든 생물 중 인간종의 문화(뛰어난 가공 능력)가 지금의 문명을 열었고, 인간의 양성 중 방어기술과 공격기술을 장악하는 쪽이 우세해지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여성에게는 육아권(育兒權)이 있다. 육아권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어떤 생활양식도 바꾸어 버릴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유리하게 성비가 나타나도록 무리하게 출산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남자아이와 이 중 어느 한 편을 선택적으로 태만하게 보살필 권한을 가진 여성의 권한 안에 존재한다."

     

이어지는 긴 본문에는, 칭찬과 배제를 통해 공격성이 덜하고 유순한 남자 아이를 기를 능력이 여성에게 있음에도 왜 여성들이 폭력성을 제어하지 않는 남성들을 키워내는지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남성들이 사나워질수록 전쟁은 더욱 빈번질 것이며, 전쟁이 빈번해지면, 사나운 남성들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남성들은 사나워질수록 더욱 성적으로 공격성을 지니게 되며 그로 말미암아 여성들은 더욱 착취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부다처제의 빈도가 높아진다. 일부다처제로 말미암아 여성의 부족현상이 심화되며, 이로 인해 여자를 얻지 못한 젊은 남성들의 좌절이 깊어지고, 이에 따라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동기가 늘어난다. 이런 확장과정은 언젠가는 견뎌낼 수 없을 정도의 극한점에 도달한다. 그 결과 여성들은 멸시받고 유아기 때에 살해되며, 남자들 공격적인 남자를 더 길러내기 위해 여자들을 약탈하러 전쟁에 나가게 된다."

     

일부다처제. 오늘의 키워드는 일부다처제다. 일부다처제는 원시사회에도 있었고 현대 사회에도 존재한다. 단지 공동체의 암묵적 승인이냐 법적 제도화냐의 차이가 있을 뿐. 앞서 보았듯 사회적, 문화적 존재인 인간종은 자연 자원이 아니라 사회적 자원으로 삶을 영위해 간다. 여성에 비해 남성들이 사회적 자원을 대거 취득한 사회에서는 원시사회의 특성, 즉 약육강식의 남성 중심 사회가 조성되고 여기에서 여성은 스스로 전사가 되지 않으면 전리품으로 전락한다.

     

한국은 여아 살해를 용인했던 전력이 있는 사회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왕조 때는 북방 제국에 전리품으로 여성들을 넘겨줬고 식민지 때는 최전방까지 끌려가 위안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6.25 한국전쟁 후에는 정부에서 나서서 여성을 통한 외화벌이를 했다. 이러니 여성들이 보기에 21세기 한국은 여전히 원시사회인 것이다.

     

자 그럼, 젊은 남성들이 꼴페미, 워마드 하면서 스스로 전사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심리는 뭘까. 마빈 해리스는 원시 사회의 일부다처제에 대해 이런 해석을 했다.

     

“야노마모족의 남편들은 자기의 동생들이나 친구들과, 자기 아내들 중 한 여자를 공유할 마음자세가 되어 있다. 그러나 아내를 빌려주는 장소에서 빌린 여자와 교접할 기회를 얻은 남자들은 그 여자의 남편에게 빚을 지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 여자의 남편에게 다른 봉사를 하거나 전쟁에서 약탈해온 여자들을 바쳐서 그 빚을 갚는다. 명예를 추구하는 젊은 남자들은 이런 의존의 위치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한다. 그는 마을의 유부녀들을 감언이설로 유혹하거나 협박을 하여 비밀교접을 갖는다. (중략) 야노마모족 남편이 자기 아내의 밀회행위를 보게 되면 물론 분노한다. 그것은 단지 성적인 질투 때문만이 아니고 간통한 남자가 정부의 남편에게 선물이나 봉사로 보상행위를 하지 않고 간통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사회적 자원을 많이 가진 남성들을 선택하면 분노하는 것은 가진 자원이 없는 남성이다. 전사가 아닌 전리품 입장의 여성에서는 능력자 남성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주어진 파이 안에서 전리품들끼리 싸우면 모를까. 일부일처제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을 위한 제도인 셈이다. 일부다처제를 원하는 남성들은 자기가 다처를 거느릴 남성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한 명의 짝도 없을 거라는 상상은 원천봉쇄하는 모양이다.

     

여성들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전리품으로 사는 길과 전사로 사는 길. 양쪽 다 고단하긴 마찬가지지만 여성을 위한 나라가 없는 마당에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럼 남성들은? 기득권에 있는 남성들이야 뺏길 불안에 떨면서 계속 없는 남자들과 전사 여자들 사이에 싸움을 붙여야 살아남는다. 이 싸움의 심판을 누가 보는지 봐라. 바로 기득권 남성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갈등이 증폭돼서 이득을 보는 집단은 절대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다. 조종하고 유지하며 끊임없이 탄환을 제공한다. 미디어를 통해서.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거기 당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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