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애령 Dec 05. 2021

겨울의 맛을 보려면 뛰어

난 겨울이 싫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엄마가 우울해했다. 옛날에 가난하게 살 때가 떠올라서 우울해졌다고 한다. 추워지면 난방비 때문에 되어서 가을과 겨울 내내 힘들었다고. 물론 엄마에게 그 말을 들을 때 우리 집은 난방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가난은 마음에 그런 흔적을 남긴다. 


작년 겨울은 별로 춥지 않았다. 대신 올해 겨울이 밀린 난방비 받아내겠다는 투로 찾아왔다. 나 겨울이야, 겨울, 나 몰라? 라고 을러대는 바람이 분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난방비 걱정을 하고 있겠지.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서 내의와 패딩을 겹쳐 입고 텐트 속에서 잠이 들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 토토는 밤마다 극세사 이불 속에 넣어주지 않으면 신경질적으로 운다. 아이고 알았어. 노묘 모시기 힘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 겨울은 자꾸 나를 바깥으로 불러내는 것 같다. 야 나와, 나오라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입을 덮고 달리고 싶다. 산 중턱에 지어진 우리 아파트 단지는 뛸 데도 마땅찮은데 자꾸 뛰고 싶다. 이젠 혈압에 눈치 줄 나이도 됐는데. 그래도 달리고 싶다. 달릴 때마다 숨 속으로 후욱 밀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야말로 겨울의 맛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10월 말만 되어도 스노보드와 스키복을 꺼내어 들고 일기예보를 보는지 알았다. 치아가 깨질 듯한 차가운 바람, 이게 바로 겨울의 맛이야. 


코로나만 아니면 스노보드를 배우고 싶다. 마흔이 넘었지만 한때 이틀 만에 혼자 스키 타기를 터득한 적도 있으니까. 예전에 일하다 얻은 스키점퍼를 입어보면서 한밤중 하얀 산을 타고 넘는 내 모습을 꿈꾼다. 그렇게 엄마의 우울은 나에게서 사라져간다. 

작가의 이전글 이른바 '중도'라는 것 그리고 <화산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