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우리 집에는 식물이 가득했다. 어렸을 때부터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며 자랐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초록함이 좋아졌던 것 같다. 독립을 하고 가장 먼저 들인 것이 내 손에 가득 들어오는 벤자민고무나무 한 그루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 동글동글 말린 잎사귀들을 보면 마음이 안정됐다. 주말이면 아침에 일어나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 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매달 월급날, 힘들었던 날, 즐거웠던 날, 특별한 날이라 생각하는 시간마다 식물을 들이고 추억을 담았다. 이듬해 겨울이 올 즈음엔 제법 많아져서 곳곳에 식물이 가득해졌고 나는 나 스스로를 식물집사라 불렀다.
4층의 4평짜리 자취방은 식물이 살기에 좋은 공간은 아니었다. 사람이 살기 좋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식물이 살기에도 좋다던데, 안타깝게도 그곳은 사람답게 살기도 힘든 곳이었다. 앞에는 큰 건물이 막고 있어 빛이 들지 않았고, 통풍도 되지 않았다. 바로 밑에는 흡연구역이 자리하고 있어 창문을 자주 열어놓지도 못했다. 게다가 호텔을 개조한 공간이라 바닥 난방이 되지 않아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야만 추위가 덜했고, 그 때문에 가습기를 24시간 틀어놓아도 건조했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무자비하게 가동해도 습도를 이기지 못해 벽지가 울었다. 작은 창문이 계절의 공격을 막아주기엔 터무니없이 약했다. 처음 맞이한 여름, 습도와 벌레를 이겨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절반 이상의 식물을 떠나보냈다.
마음 아프게도 그 해 겨울, 내가 마음을 준 12개의 식물이 모두 죽었다. 식물마다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의 추억을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 찬바람을 막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자책하며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 말했다.
슬퍼하는 나에게 위로가 되는 건 식물이라는 걸 알던 짝꿍은 내가 오랫동안 들이고 싶어했던 식물을 선물했다. 두 개의 잎사귀를 품고 있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화분이었다. 그 식물은 키우기 조금 어려운 친구라 햇빛도 잘 쐬어주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줘야하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또 잘 키우지 못할까봐 망설인다는 걸 곁에서 가장 가까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퇴사기념으로 선물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화분을 안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손으로 감싸안고 집 안에 틈새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올려두었다. 휑한 책상이 초록빛 한 줄기로 밝아졌다.
뮤지컬을 보고 온 날, 퇴사 후 처음으로 침대가 아닌 책상에 앉아 그 화분을 보니 잎사귀가 노랗게 바래있었고 몸은 축 쳐져 있었다. 빛바랜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 아이가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도 저런 모습일까?’
‘나라는 사람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던 사람인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무기력해졌지?’
저 친구는 꼭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가고 봄바람이 살랑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