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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휴식은 도망치는 게 아니다.

by 혜윰이스트

워킹맘은 연차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나 같은 경우에는 연차를 내는 것도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고작 병원에 가기 위해 내는 연차가 고작이다.


그렇게 병원 치료를 마치고 잠깐의 시간이 남아 간 카페.

아이가 없는 카페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실 때면 이상한 감정이 밀려온다.

잠시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없는 자유로움에 숨통이 트이지만, 곧이어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스민다.


“이 시간에 아이는 뭘 하고 있을까”


주말에 혼자 카페에 가는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남편이 힘들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이 짧은 해방감이 마치 ‘도망’처럼 느껴질 때, 마음이 복잡해진다.

워킹맘의 일상은 늘 이 두 감정 사이를 오간다.

일을 하면 아이에게 미안하고, 아이를 돌보면 일에 미안하다.


사회는 여전히 ‘좋은 엄마’의 기준을 희생과 헌신으로 그려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묻고 싶다.

끝없는 희생이 정말로 ‘좋은 엄마’의 표상일까?

해방감을 느낀다는 건, 나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신호다.

하루 종일 업무와 돌봄의 책임을 짊어진 몸과 마음이 잠시 숨을 고르는 그 순간, 인간으로서의 균형이 회복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정상적인 회복의 순간조차 죄책감으로 덮어버린다.

사회적 시선과 내면화된 역할의식이 ‘쉬어도 되는 나’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봄과 노동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워킹맘에게 필요한 건 ‘희생의 미학’이 아니라 ‘균형의 지혜’다.


누구를 위한 엄마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좋은 엄마’보다 ‘건강한 나’로 존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지치고 무너지면, 사랑도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엄마는 말했다.

“잠깐 쉬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는 기분이에요.”

그 말은 워킹맘들이 겪는 현실의 진실이다.

휴식조차 미안한 구조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건 마치 사치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일을 위해서라도,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근본이다.


나는 그 균형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하루의 피로와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면, 그 안에서 내 마음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

“괜찮아, 오늘도 잘했어.”

이 짧은 문장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격려가 된다.

글쓰기는 죄책감의 무게를 덜어내고, 해방감이 죄가 아니라 회복의 증거임을 깨닫게 해 준다.


워킹맘의 삶은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웃을 줄 알고 쉬는 법을 아는 엄마다.

내가 나를 이해할수록, 아이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 오늘 하루, 잠시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허락하자.

그건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다.

해방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흔들릴 때마다 이렇게 속삭이자.

“나는 여전히 충분히 좋은 엄마이고, 충분히 괜찮은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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